제주4.3 이도종 목사 이야기
“예수가 하느님이 맞다면 우리 공산 인민이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양민을 죽이는 무신론자들의 승리를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폭도 대장이 입을 열었다. “이놈에게 인민재판을 열어라”
이도종 목사는 제주 출신 1호 목사이며, 제주 출신 제1호 순교자이다. 이도종은 1892년 9월 13일 현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문을 공부했고 1908년에 제주도 선교사로 내려온 이기풍을 만났다. 이도종은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에서 전도한 첫 번째 기독교인이다. 이기풍 목사와 이도종 목사는 제주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제지간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것도 비슷하다. 이도종 목사는 1919년에 독립자금 모금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한쪽 다리를 절었다.
이도종 목사는 1927년 전북 김제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29년부터 제주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1937년에는 제주 고산교회에 목사로 부임하여, 고산교회를 중심으로 두모, 조수, 용수, 법환, 중문까지 자전거를 타고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1948년이 되었고, 4.3폭동이 발발했다.
1948년 6월 18일, 이도종 목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전거를 타고 순회 목회를 가고 있었다. 현 대정읍 무릉리 인향동 부근에서 한 무리의 인민유격대와 마주쳤다. 폭도들은 이도종 목사를 심문하고 목사임을 밝히자 “양놈 사상과 미제국주의를 전파하는 스파이”라며 이도종 목사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폭도들은 이도종을 구타하다가 이도종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예수가 하느님이 맞다면 우리 공산 인민이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도종은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양민을 죽이는 무신론자들의 승리를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폭도 대장이 입을 열었다.
“이놈에게 인민재판을 열어라”
즉석에서 인민재판이 열렸고 폭도 대장이 이도종 목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 방식은 생매장이었다. 폭도들이 구덩이를 파고 이도종 목사를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도종 목사는 구덩이 안으로 흙덩이를 채우는 폭도에게 가방을 달라고 부탁하여 “이것을 선물로 드리겠소”라며 가방에서 꺼낸 성경책을 건넸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폭도에게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드리겠소, 여러분도 예수 믿고 후일 하늘나라에서 만납시다.”
구덩이가 흙덩이로 메워져 가자, 이도종 목사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꿇어앉아 기도를 드리는 이도종 목사 위로 흙덩이가 던져지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도종 목사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주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이도종 목사 위로 흙과 돌이 던져지면서 이도종 목사의 기도 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리고 기도 소리가 그쳤다. 이도종 목사를 생매장한 흙 위로 가시덤불과 나뭇가지들이 덮였다. 이도종 목사의 순교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나중에 체포된 폭도의 진술로 마지막 장면이 밝혀졌다.
1949년 봄 즈음부터 제주인민유격대는 마을을 습격하여 식량 약탈과 살인 방화를 서슴지 않는 폭도가 되어 있었다. 이도종 목사가 순교한 지 1년여가 지났을 때 일단의 폭도들이 마을을 습격했다. 식량을 약탈하고 폭도들이 떠났을 때 낙오된 폭도 한 명이 마을 주민들에게 잡혔다. 폭도는 아주 귀해 보이는 회중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필 그 폭도가 침입했던 집은 이도종 목사의 동생 집이었고, 폭도를 잡은 사람은 이도종 목사의 동생 기종과 성종이었다.
폭도를 추궁한 결과 행방을 몰랐던 이도종 목사의 순교가 그제야 밝혀졌다. 폭도의 안내로 이도종 목사의 유해가 발굴되었고, 시신은 부패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그날 아침에 입고 나갔던 비둘기색 두루마기와 꿇어앉아 기도하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의 나이 향년 57세였다. 대정읍 인성리 대정교회에는 1957년에 세운 ‘목사 이도종 기념비’가 서 있고, 그 옆에는 2007년에 세운 기념비가 서 있다.
이도종 목사가 순교했던 장소인 서귀포시 대정은 무릉리 산63번지 길가에는 여러 단체에서 세운 이도종 목사 추모비들이 서 있다. 종교단체에서 세운 것들도 있고, 애국단체에서 세운 것도 있다. 혹시 제주도를 방문하는 기회가 있어 대정 지역을 지나가게 되었다면 여기에 차를 세우고 잠시 머리를 숙이시고 지나가시라.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에 굴복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