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해지고 싶은가?
역사적 추모와 공적 검증 사이 균형 요구 커져
세상에 절대 신성한 가치는 없다. 그것을 숭고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숭고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게 무슨 어느 기업의 탱크 텀블러 때문일까? 폭행 진실 공방 때문일까? 아니다. 이것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과도한 신성불가침 성역화 시도가 빚어낸 해프닝이다.
신성불가침 가치는 작은 흠집에도 쉽게 무너진다. 만약 좌파 진보 세력이 5.18을 진심으로 거룩하게 기억하고 싶었다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몇 가지 쉬운 방법이 있었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추모는 추모대로 하되 빨라도 2050년 이후에 그날의 일들을 차분하게 기록하고, 국민적 공감을 모아 역사 한켠에 안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직간접으로 5.18을 경험한 동시대 국민의 혼란과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 서로 다른 견해와 비판이 상존하는 가운데 무리한 성역화에 나섰고,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치부하겠지만, 총체적인 실패였다. 그들에겐 정치적 상징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그것이 돈이 된다는 걸 간파해 더러운 숟가락을 얹은 결과라고 많은 이들이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엄청난 유공자 혜택을 받는 이들이 누군지 알지 못하도록 금기의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공로자를 숨기는 일은 없다. 그 베일이 언제까지 치부를 가려줄 수 있다고 믿는가?
그리고 그들은 때가 되면 거룩한 기억을 술판의 안주로 삼고, 폭언을 하고, 술에 취해 시민과 경찰을 폭행한 것이 그 거룩한 기억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를 응징하려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도 계속 5.18이 신성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발상이다.
이런 일들로 인해 훗날 역사는 5.18에 대해 반드시 ‘이권(利權)’이란 말을 기록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역사로서 가치가 없다. 그것이 지금 다수의 국민이 보는 5.18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미 민주화라든가 희생이라는 말들은 그 본질에서 너무 멀어졌다.
거룩하다고 말하면서 거룩한 대상에 끊임없이 스스로 먹칠하는 행위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5.18의 기억과 기록들이 거룩해지려면 얼룩진 먹물을 씻어내고, 가려진 장막을 걷은 후 그날의 일과 그 숨져간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처음부터 다시 국민 기억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도 계속 거룩해지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