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동을 비용이 아닌 성장동력으로 본 시흥시, ‘노동 존중 도시’의 속도를 높이다

기자수첩 한마디 "노동을 존중하는 도시는 사람을 지키고, 사람을 지키는 도시는 결국 가장 오래 성장한다"

2026-04-27     송은경 기자
송은경

[뉴스타운/송은경 기자] 도시의 경쟁력은 공장 수나 산업단지 면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업이 들어오고 투자가 늘고 기반시설이 확충돼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불안하면 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산업은 결국 노동 위에서 움직이고,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도시는 생산성을 말할 수 있어도 지속 가능성을 말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시흥시가 노동정책을 단순 복지나 민원 대응 차원이 아니라 도시 발전의 핵심 전략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시흥은 국내 최대 산업단지 중 하나인 시흥스마트허브를 품고 있다. 2024년 경기도 사업체 조사 보고서 기준 전체 사업체 종사자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 비율이 36.8%에 이르는 노동집약형 도시다. 이 수치는 시흥 경제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시흥에서 노동은 일부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노동자의 권익이 흔들리면 지역경제가 흔들리고, 노동환경이 열악하면 기업 경쟁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시흥의 노동정책은 복지정책이면서 동시에 산업정책이고, 시민정책이면서 동시에 성장정책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3월 노동지원과 신설은 단순한 조직 개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경기도 유일의 노동 전담 부서를 설치했다는 것은 노동문제를 여러 부서에 흩어진 부수 업무로 두지 않고 시정의 독립된 과제로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행정에서 전담 부서는 곧 책임의 시작이다. 책임이 있어야 계획이 만들어지고, 계획이 있어야 예산과 사업이 따라붙으며, 사업이 있어야 현장이 바뀐다. 시흥시는 노동지원과를 중심으로 노동자 권익증진, 복지 인프라 구축, 노동환경 개선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고 있다.

특히 올해 안에 수립할 ‘노동정책 5개년 기본계획’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2027년부터 2031년까지의 중장기 방향을 담는 이 계획은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 확산, 산업구조 전환, 플랫폼 노동 증가, 특수고용 확대, 단시간·비정형 노동 확산은 이미 지역 노동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의 정규직 중심 보호체계만으로는 변화한 노동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시흥시가 지역 특성과 산업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해 단계별 맞춤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노동 인식 개선 교육, 안전수칙 교육, 직무역량 강화 프로그램, 협업 워크숍도 같은 선상에 있다. 노동정책은 조례와 예산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노동자, 사용자, 행정, 시민사회가 함께 이해하고 움직여야 실효성이 생긴다. 노사민정협의회의 내실화도 그래서 중요하다. 노동 현안은 갈등이 터진 뒤 봉합하는 방식으로는 늦다. 상시적 대화 구조를 통해 갈등을 예방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권익 보호 분야에서는 생활임금제가 핵심이다. 생활임금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통해 노동자의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려는 사회적 임금제도다. 시흥시는 매년 심의위원회를 통해 생활임금 단가를 결정하고, 생활임금 이상 지급을 서약한 기업에 공공계약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민간 확산도 유도하고 있다. 이는 공공이 먼저 기준을 세우고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최저임금이 최소 생계의 기준이라면 생활임금은 지역사회가 노동자의 존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기준이다.

노동취약계층 유급병가 지원사업 역시 시흥 노동정책의 의미 있는 축이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하지만, 일용직·단시간·특수형태 근로자에게는 현실이 다르다. 하루 쉬면 하루 소득이 사라지고, 입원이나 건강검진은 곧 생계 공백으로 이어진다. 시흥시는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 노동취약계층 근로소득자에게 입원 치료와 건강검진으로 발생하는 소득 감소분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단순 지원금이 아니라 아픈 노동자가 생계를 이유로 치료를 미루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노동안전지킴이 사업과 노동상담소 운영도 빼놓을 수 없다. 산업재해 우려가 큰 건설 현장을 상시 점검하는 것은 사고 이후의 수습보다 훨씬 중요한 예방 행정이다. 노동상담소는 소상공인과 근로자에게 무료 법률·노무 상담을 제공하며 권리 구제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많은 노동자는 부당한 일을 겪어도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모른다. 상담 창구가 있다는 것은 행정이 노동자의 권리를 제도 밖에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복지 인프라 측면에서는 MTV근로자지원시설 건립이 상징적이다. 약 40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시설은 지상 10층 규모로 숙박, 교육, 편의 기능을 갖춘 복합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노동자 복지는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쉬고, 배우고,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근로자지원시설은 산업단지 노동자의 복지 수요를 흡수하고, 동시에 시민 문화생활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생활복지 확장의 접점이 될 수 있다.

기존 인프라도 촘촘히 연결되고 있다. 정왕동 시흥시 근로자종합복지관은 문화·교양 프로그램과 생활 편의 기능을 제공하고, 경기 이동노동자 쉼터 ‘온마루’는 배달·대리운전 등 이동노동자의 휴식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흥시 노동자지원센터는 노동 상담과 노동인권 교육을 통해 현장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시설들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연결될 때 노동복지는 점이 아니라 면이 된다.

작업복 세탁소 ‘블루밍’은 작지만 체감도 높은 정책이다. 영세·중소 사업장 노동자는 유해물질에 오염된 작업복을 제대로 세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작업복을 가정으로 가져가면 위험은 노동자 개인을 넘어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확산될 수 있다. 시흥시는 2023년부터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복 세탁 서비스를 지원하며 노동자의 편의와 건강권을 함께 챙기고 있다. 이용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은 이 정책이 현장의 필요를 정확히 짚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전한 일터 조성은 노동정책의 가장 기본이자 마지막 기준이다. 시흥시는 중대재해예방팀 신설 이후 4년 연속 ‘중대재해 제로’를 달성하고 있다. 이 성과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설물 점검, 도급·용역·위탁 사업장 안전관리, 예방 중심 행정이 누적돼야 가능한 결과다. 올해 시범 운영하는 ‘아차사고 신고제’도 같은 방향이다.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장비 결함, 부주의한 행동, 불안정한 작업환경을 사전에 발견해 사고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중대재해는 발생한 뒤 책임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발생하지 않게 막는 일이다. 행정의 역할은 사고 이후 해명문을 내는 데 있지 않고 사고 이전 위험을 제거하는 데 있다. 시흥시가 전문기관 기술점검과 발주 사업장 안전점검을 병행하고, 예산 규모와 관계없이 예방적 현장 점검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안전은 선택 사업이 아니라 행정의 기본 의무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노동지원과 신설과 기본계획 수립이 실제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예산, 인력, 평가체계가 함께 따라야 한다. 좋은 정책 이름만으로 노동자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생활임금은 민간 확산 속도를 점검해야 하고, 유급병가는 사각지대 노동자에게 실제로 닿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근로자지원시설은 건립 이후 운영 방식이 노동자의 현실과 맞는지 따져야 한다. 노사민정협의회도 회의 개최 횟수가 아니라 현안 해결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시흥시의 방향은 분명하다. 노동을 행정의 주변부가 아니라 도시 성장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산업도시 시흥이 선택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노동자가 안전해야 기업도 안정되고, 노동자가 존중받아야 산업도 지속되며, 노동자의 삶이 나아져야 도시의 체감 경쟁력도 높아진다.

도시 발전은 결국 사람의 문제다. 산업단지가 아무리 커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불안하면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없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복지를 넓히고, 안전을 보장하는 행정이야말로 도시의 미래를 준비하는 행정이다. 시흥시가 추진하는 노동 존중 정책은 그래서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도시 체질을 바꾸는 작업에 가깝다.

시흥은 이제 노동정책을 통해 도시 경쟁력의 기준을 다시 쓰고 있다. 공장과 기업만 바라보던 산업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의 삶까지 살피는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 뿌리내릴 때, 시흥의 노동정책은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자 시민 삶을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성장 전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