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우파들의 트럼프와 거리두기
사자성어에 교토삼굴(狡兎三窟)이 있다. 아주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는 의미이다. “위기에 대비해 여러 가지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 우물만 판다’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국제 사회가 구조적인 변화가 급격히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 우물만 파서는 망하기 십상’이다. ‘영리한 토끼(狡兎)’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합동으로 이란을 공격해 시작으로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생존을 위한 전쟁 이어가기에 끼어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유럽의 우파들조차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있으며, 이에 이번 미국의 군사 작전이 국제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사태는 악화 일로를 걷게 됐다. 교황 레오 14세가 이란 공격 중단을 촉구한 뒤, 트럼프 대통령의 교황을 향한 비난이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이스라엘 병사가 레바논 남부 데벨 마을에서 예수상을 도끼와 같은 큰 망치로 내려치며 훼손한 사건이 소셜미디어에 널리 퍼지면서 세계의 큰 분노를 일으키면서 기독교인들의 엄청난 공분을 사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예수상을 훼손한 병사에게 “30일간의 군사 구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예수상 훼손 현장에 있었음에도 개입하거나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나머지 6명의 이스라엘 군인에 대해서는 별도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조치에 기독교인들의 반응이 주목된다.
교황뿐만이 아니다.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비롯한 유럽의 우익 지도자들이 트럼프와 관계를 재고(再考)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의 극우 정당들도 트럼프의 이란 공격을 비판하며 이를 "잘못된 발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헝가리 총선에서 트럼프의 지원을 받은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참패하면서, 유럽 우익 정당들이 트럼프와의 협력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 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으며,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란과의 휴전 협정이 다시 연기 되는 등 이란과의 협상은 매우 불투명하면서, 만일 미국이 합의에 실패하고 공격을 재개할 경우,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이란에 대한 군사 작전이 국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의 2개월이 돼 가는 이란과의 전투가 신속히 종식되지 않는다면,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위신은 더욱 손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유럽의 우파 진영이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게 된 계기는 “교황 레오 14세”가 이란 공격 중단을 촉구한 후 트럼프가 교황을 반복적으로 비판한 것이 화근(禍根)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이 “이란의 핵물질 보유를 묵인하고 있다”고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교황을 “나약하다”(WEAK)고 강하게 비난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한 이미지를 게시했다. 이 이미지는 유럽뿐 아니라 그의 지지 기반인 미국의 기독교 보수층으로부터도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우익 지도자이며 트럼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몇 안 되는 유럽 지도자 중 한 명인 이탈리아 총리 조르지아 멜로니 총리는 “교황이 모든 형태의 전쟁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트럼프의 교황 비판을 일축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의 강력 지지자인 멜로니 총리는 “바티칸이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위치해 있고, 이탈리아 인구의 대다수는 가톨릭 신자”라는 점에서 그러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멜로니 총리만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트럼프와의 협력을 옹호했던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과 영국 우익 정당인 리폼 UK의 지도자들도 이란 공격을 비판하며 이번 작전을 ‘잘못된 발상’(ill-conceived)이라고 규정했다. 이들 정당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유사한 원칙과 “포퓰리즘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여 유럽연합(EU) 및 기타 국제 협력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4월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집권당은 참패를 당했다. 유럽 전역의 우익 정당들이 트럼프와 ‘지나치게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오히려 불리하다는 확신이 점점 더 강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두 번째 임기 중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를 비롯한 여러 품목의 소비자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휴전 협상이 끝날 때까지 휴전 협정을 연장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분명히 언젠가는 전쟁은 끝을 맺을 것이다. 미국이 이란과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공격을 재개해 전쟁이 장기화 되면, 미국이 수렁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유럽의 우익 지도자들은 트럼프와의 거리두기에만 나설 것이 아니라 ‘진정한 조언’ 등 교토삼굴(狡兎三窟) 지혜의 발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