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 독재는 쉽지 않다!
삼인성호, 을사오적, 사육신, 생육신 …
이 말들에서 3·5·6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실이나 나라의 운명, 심지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에 여러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지금 독재를 향해 폭주하는 이 정권을 멈추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상용, 김영남, 강백신, 방용철 등등. 자신에게 닥칠 잠재적인 불이익이나 위협에도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이들을 어떤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이 정권은 ‘국민’에 대해 무언가 깊은 착각에 빠진 듯했다.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국민을 설득할 대상, 나아가서 가르칠 대상, 더 나아가서 압제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았나 본다. 부동산 정책에서도 그랬고, 중국이나 북한에 대해서도 그랬다. 국무회의에서 공직자들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는 시종일관 훈장 선생님 같았다.
그런데 대통령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지워보려고 시작한 국조특위에 와서 그 임계점이 노출된 것이다. 증인 선정에서부터 퇴장 명령, 발언 가로막기, 훈계, 강압 등 추태가 증인들의 민감한 자존심을 건드렸다. “아니다!”와 “잘못하고 있다!”라는 원색적인 반발이 쏟아져 나왔다. 버티던 둑이 터진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역사적으로 이 나라 정치권은 국민에 대해 강압하거나 오만한 태도를 금기로 여겨 왔다. 그것은 왕이나 정치인들이 겸손하거나 미덕을 보여주기 위해 그랬던 게 아니다. 국민이 정치인을 그렇게 길들인 탓이다. 반역도 모자라 세조에게 대든 사육신이나 그 수많은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 식민 지배에 항거한 역사를 기억해 보라.
이 나라 좌파들은 죽창(竹槍)을 알 것 아닌가. 임진왜란 때 죽창 들고 바득바득 저항하는 조선의 노비(奴婢)들을 본 왜군들이 너무 신기해서 물어보았단다. “너희 나라 임금은 저 멀리 도망치고 없는데, 네 나라도 아니면서 왜 목숨 걸고 싸우느냐?”라고 물었더니 “왕은 자기가 알아서 하고,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한다!”라고 대답하더란다.
이 나라 국민은 저마다 ‘내가 이 나라 주인이다!’라는 생각을 아주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이런 나라를 본 일이 있는가? 이 정권은 역사 공부 다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