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란전쟁과 무관, 화장지 사재기 대란”
- 긴축 정책 일환으로 종이 제품 절약 강조, 여성들의 화장지 사재기로 변해
일본이 화장지 사재기에 나서면서 대규모 화장지 대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이란 갈등이 국제 유가 시장을 뒤흔들면서 일본 소비자들은 화장지를 사재기하고 있다. 화장지 자체는 이번 이란전쟁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일본 정부가 국민들에게 사전 구매를 자제해 달라고 촉구할 정도로 심각한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미국의 포춘지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본 정부의 화장지 사재기 자제 당부에도 불구하고 소셜 미디어(SNS)에는 화장지가 바닥난 사진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하지만 왜 일본 사람들은 분쟁과 무관하거나 분쟁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물건들을 사재기하는 걸까?
포춘은 “사재기 현상은 뱅크런과 매우 유사하다”면서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단 하나의 확실한 데이터, 예를 들어 ‘이 가게에 화장지가 다 떨어질 거야’ 또는 ‘이 은행에 돈이 바닥날 거야’와 같은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누군가 소셜 미디어에 코로나19, 관세, 혹은 이란과의 전쟁 때문에 화장지 재고가 바닥날 거라고 올리면, 전국 각지의 모르는 사람들이 카트에 화장지를 가득 싣기 시작한다“고 일본 현상을 전했다.
* 팬데믹 시대의 사재기 현상 복귀
코로나19 대공황 당시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2020년 3월 12일, 화장지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34%나 급증, 그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물품이 됐다. 2020년 화장지 대공황( the Great Toilet Paper panic)이 끝날 무렵에는 전 세계 식료품점의 70%가 한때 화장지 품절 사태를 겪었는데, 이는 기록적인 수치였다.
화장지 부족 사태는 너무나 심각해서 미국인들의 화장실 사용 습관에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왔다. 비데(Bidet) 판매량이 급증했고, 많은 가정에서 비데 사용이 정착되었다. 하지만 이후 이 사건을 연구한 학자들은 화장지 공급망에 실제적인 차질은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생산은 꾸준히 이루어졌고 유통도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오히려 화장지 부족 사태는 거의 전적으로 공황과 과장된 홍보의 산물이었다.
이제 사재기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이번에는 일본에서인데, 어떤 면에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모든 분야의 공급망이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사재기하려는 본능에는 적어도 논리적인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공급망 차질은 이란 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 때문이지, 소비재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화장지 사재기 열풍을 겪었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역사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 일본의 화장지 대란 역사
일본에서 최초의 화장지 대란이 발생한 것은 1973년으로, 중동의 석유 분쟁이 그 원인이었다. 당시 국제무역산업부 장관이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국민들에게 종이 제품 절약을 촉구하면서 사태가 시작되었다.
이 발표는 긴축 정책을 시사하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화장지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소문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가계 예산 관리에 신경 쓰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화장지를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공황 상태를 중산층의 불안감이 증폭된 결과, 즉 자신들의 생계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공포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그 이후로 일본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화장실 용품을 사재기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2011년의 대지진과 쓰나미(earthquake and tsunami) 당시에도 비슷한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지만, 피해 지역에서는 실질적인 피해는 비교적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 악순환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화장지가 왜 늘 사재기의 대상이 될까?
화장지는 부피가 크고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진열대에서 사라지면 눈에 확 띈다. 또, 소비하고 새로 구입하는 리듬이 있는 음식과는 달리, 화장지는 장기적인 안정과 책임감을 상징하는 일종의 심리적 범주를 차지한다.
인류학자 그랜트 준 오츠키(Jun Otsuki)는 2021년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해 ”화장지의 중요성은 현대 문화의 핵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세상에서 화장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화장지를 확보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고 썼다.
지금까지는 일본을 벗어나 공포감이 크게 확산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웃 나라인 호주에서는 퍼스에서 사재기 조짐이 보인다는 보고가 있었다. 마치 바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던 외침이 드디어 호주에도 닿은 듯하다고 포푼은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