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철로가 가른 도시, 안양…경부선 지하화는 선택 아닌 과제
기자수첩 한마디 "안양의 철도지하화는 개발계획의 문장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뉴스타운/송은경 기자] 안양 도심을 가로지르는 경부선 철로는 오랫동안 도시의 경계선이었다. 행정구역은 하나지만 철도를 기준으로 생활권이 갈리고, 길은 끊기고, 소음과 분진은 익숙한 일상이 됐다. 시민들에게 철도지하화는 낯선 미래 구상이 아니라 오래된 생활 요구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늘 필요성과 현실론 사이에 묶여 있었다.
안양시가 12일 경기도 주관 ‘철도지하화 통합개발사업 비전선포식’에 참석해 경부선 지하화의 조속한 추진 필요성을 다시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행사성 메시지로 소비될 사안이 아니다. 철도지하화는 선로를 땅 아래로 내리는 공사만이 아니라, 도시 구조 자체를 다시 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양처럼 압축 성장해 온 도시에서 철도는 한때 발전의 축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도심 단절과 생활 불편을 고착시키는 구조물로도 작동해 왔다. 그래서 경부선 지하화 논의는 이제 단순한 교통 인프라 개선이 아니라 도시 재편과 미래 성장 전략의 문제로 읽혀야 한다.
안양시는 경부선 철도지하화 필요성을 2010년부터 제기해 왔다. 단발성 주장이나 최근의 정책 유행에 올라탄 사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후 2012년에는 용산·동작·영등포·구로·금천·군포 등 수도권 7개 기초지자체와 함께 추진협의회를 구성하며 공동 대응 체계를 만들었다. 개별 지자체가 각자 필요성을 주장하는 수준으로는 중앙정부의 정책 결단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 철도는 국가 기반시설이고, 철도지하화는 재정과 기술, 행정 권한이 동시에 얽힌 사안이라 지방정부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결국 이 문제는 도시의 절실함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제도와 재정, 국가계획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24년 1월 제정된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단순히 철도를 지하화하는 차원을 넘어, 상부 공간을 통합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법적 틀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안양시를 포함한 수도권 지자체들의 지속적인 요구가 입법의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이 법은 오랜 문제 제기의 첫 제도적 결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졌다고 사업이 곧바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안양시가 지난 4일 용산역 일대에서 열린 추진협의회 회의에 참석해 ‘종합계획 발표 촉구 공동성명서’에 서명한 것도 그래서다. 지방정부들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정부의 실행 계획이다. 철도지하화 통합개발은 결국 국토교통부의 종합계획에 반영돼야 실질적인 절차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도시개발 구상이 발표와 구호 단계에 머문 이유도 이 지점과 무관하지 않다. 중앙정부의 결단이 늦어질수록 지방정부의 구상은 다시 기대와 대기 사이에 묶이게 된다. 안양시가 이번 비전선포식 참석을 계기로 “조속한 추진”을 다시 언급한 것도 단순한 입장 표명이 아니라, 이제는 국가계획에 실제로 담아야 한다는 압박의 성격이 짙다. 도시가 체감하는 불편은 계속되는데 정책 결정의 시간만 길어지는 구조를 더 방치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읽힌다.
안양시가 구상하는 사업 범위는 석수역부터 명학역까지 약 7.5km 구간이다. 이 구간이 지하화되면 지상에는 약 49만㎡의 공간이 새로 확보된다. 숫자만 놓고 보면 개발 가능 면적이 늘어나는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의미는 훨씬 크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막고 있던 선형 장벽이 걷히고, 단절된 생활권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이 상부 공간에 대해 안양시는 청년·근로자·노년층을 위한 맞춤형 주거 환경과 청년 창업, 기업 유치를 위한 신성장 거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반 미래 산업 일자리 창출까지 연결하고 있다. 물론 이런 청사진은 아직 구상 단계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철도지하화를 단순한 토목사업이 아니라 도시 기능 재배치와 산업 전략, 정주 여건 개선을 묶는 통합 프로젝트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철도를 지하화한 뒤 그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가 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도시공간을 다시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그 공간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일지까지 설계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이번 비전 발표에서 내놓은 구상도 규모 면에서 결코 작지 않다. 경부선과 경인선, 안산선, 경의중앙선 등 도내 4개 주요 노선을 대상으로 총연장 약 32km, 상부 개발 면적 약 343만㎡, 예상 총사업비 17조 3,222억 원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수치는 철도지하화가 개별 도시의 현안이 아니라 수도권 공간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광역 사업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만큼 현실적 난제가 크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17조 원이 넘는 사업비는 정치적 구호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상부 개발 수익을 통해 일부 재원을 충당한다는 논리는 가능하지만, 실제 사업성은 입지와 수요, 경기 흐름, 개발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철도는 공사 중에도 기능을 유지해야 하기에 기술적 난도 역시 높다. 결국 사업비 조달, 공사 방식, 운영 안정성, 이해관계 조정이 동시에 풀려야 한다. 이 때문에 철도지하화는 늘 필요성에서는 공감대를 얻고도 실행 단계에서는 속도가 붙지 못했다. 문제는 그렇다고 계속 미루기만 하기엔 도시가 감당하는 기회비용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안양의 경우 철도는 단순히 선로가 지나가는 시설이 아니다. 도시 내부의 흐름과 생활권 구조를 오랫동안 규정해 온 축이다. 철도 주변은 발전했지만 동시에 분리됐다. 선로를 건너는 문제는 곧 이동의 문제였고, 이동의 문제는 곧 생활권의 문제였다. 도시가 성장할수록 이런 단절의 비용은 더 커진다. 사람과 상권, 교통과 주거, 행정과 생활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할 도심에서 물리적 장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비효율을 만든다. 철도지하화 논의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철도가 도시 발전을 이끈 핵심 인프라였다면, 이제는 입체적 공간 재편과 생활환경 개선이 더 중요한 도시정책의 기준이 되고 있다. 결국 같은 철도라도 시대가 바뀌면서 그 의미와 역할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 셈이다. 안양시가 철도지하화 이후 확보 공간을 주거와 창업, 산업 유치, 일자리와 연결시키는 이유 역시 이러한 정책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다.
물론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대형 개발사업은 언제나 장밋빛 청사진을 동반한다. 청년, 미래산업, 자족도시, 혁신거점 같은 표현은 익숙하고 매력적이지만, 실제 사업에서는 그 문장이 얼마나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예산 구조, 사업 방식으로 뒷받침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철도지하화 역시 마찬가지다. 상부 공간 개발이 공공성보다 수익성 중심으로 흐르지 않을지, 원도심 회복과 생활권 연결이라는 본래 목적이 부동산 개발 논리에 밀리지 않을지, 실제 시민 체감 효과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대규모 사업일수록 선언은 화려하지만 실제 내용은 추상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의 감정적 접근이 아니라, 계획의 실체를 하나씩 검증하는 일이다. 어느 구간부터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상부 개발의 공공성과 사업성은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 국토교통부 종합계획에는 어떤 형태로 반영될 것인지가 분명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있다. 안양의 경부선 지하화는 더 이상 막연한 희망사항에만 머물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년간의 문제 제기와 지자체 연대, 특별법 제정, 광역 차원의 비전 발표까지 왔다면 이제 남은 것은 실행의 문턱을 넘는 일이다. 도시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보다 실제 공간 변화에서 결정된다.
안양 도심을 오랫동안 동서로 갈라놓은 철로가 앞으로도 그대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도시를 다시 잇는 전환점이 될지는 국토교통부의 종합계획과 후속 정책 판단에 달려 있다. 지방정부는 이미 필요성을 충분히 말했다.
경기도도 광역 비전을 제시했다. 이제 중앙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철도 위에서 멈춰 선 도시의 시간을 더 늦출 이유는 많지 않다. 오히려 지금부터는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정교하게, 얼마나 시민 삶에 실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기자수첩 한마디 "안양의 철도지하화는 개발계획의 문장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시민이 오래 겪어온 불편을 끝내고 도시의 단절을 회복하는 실질적 정책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