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기획] 용인특례시, 환경시설 지하로 넣고 시민공간 지상으로
혐오시설에서 도시 인프라로…용인레스피아의 변화 용인레스피아 에코타운 시험가동...하수·음식물 처리시설 지하화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도시는 눈에 보이는 건물과 도로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민들이 사용하는 물이 어디로 흘러가고, 하루 동안 쏟아지는 생활폐기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까지 포함해 도시의 일상은 유지된다. 하지만 이런 기능을 담당하는 시설들은 오랫동안 시민 생활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여 왔다. 하수처리장이나 음식물폐기물 처리시설 같은 환경기초시설은 도시 운영에 필수적이면서도 ‘가까이 두기 싫은 시설’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특례시 처인구 포곡읍에 자리한 용인레스피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이러한 오래된 인식을 조금씩 바꾸려는 시도에 가깝다. 용인시는 이곳에서 ‘용인에코타운 조성사업’을 추진하며 하수처리시설과 음식물폐기물 처리시설, 슬러지 자원화시설 등을 새로 설치하거나 증설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주요 시설 설치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현재 시험가동이 시작됐고, 계획대로라면 오는 6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겉으로 보면 환경기초시설 확충 사업이 하나 더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번 사업은 단순한 시설 증설을 넘어 환경시설을 도시 공간 속에서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환경시설을 지하로 넣고 지상 공간을 시민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용인레스피아는 그동안 하루 5만6000톤 규모의 하수처리시설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도시 규모가 커지고 생활권이 확대되면서 처리 능력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사업을 통해 하루 2만2000톤 규모의 2단계 하수처리시설이 추가되면서 전체 처리 능력은 하루 7만8000톤까지 확대된다. 기존 시설 대비 약 39%가량 늘어나는 규모다.
하수처리시설 증설은 단순히 환경 행정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시 개발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처인구 동지역과 포곡읍, 양지읍 일부는 경안천 수계에 속해 있어 수질오염총량제 적용을 받는 지역이다. 이 제도는 하천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 오염물질 배출 총량을 관리하는 제도인데, 공공하수처리 능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개발행위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
결국 하수처리시설 확충은 도시 성장 기반을 미리 확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공동주택이나 산업시설 등 새로운 개발이 이뤄질 때 발생하는 오염 부하를 감당할 수 있는 공공시설이 확보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증설로 인해 향후 처인구 일대의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허가 부담도 일정 부분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업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음식물폐기물 처리 방식이다. 그동안 용인시는 시 전역에서 발생하는 음식물폐기물을 민간 업체에 위탁해 처리해 왔다. 매년 약 100억 원 규모의 비용이 들어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용인레스피아에 하루 250톤 규모의 음식물폐기물 처리시설이 새로 설치되면서 처리 구조에도 변화가 생기게 됐다. 앞으로는 아파트 등 가정에서 발생하는 음식물폐기물 대부분을 이곳에서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시는 자체 처리 체계로 전환될 경우 연간 처리 비용이 약 7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약 30% 수준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비용 절감뿐 아니라 폐기물 처리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민간 처리시설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공공시설을 통해 자체 처리 체계를 갖추게 되면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나 처리 지연 문제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에코타운 조성사업에는 하루 220톤 규모의 슬러지 자원화시설도 포함돼 있다. 하수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슬러지는 그동안 처리해야 할 부산물 성격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자원과 에너지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용인특례시는 음식물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슬러지 자원화시설의 연료로 활용하고 일부는 수소 생산에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경기도 ‘미니 수소도시 조성 지원 사업’과도 연결된다. 시는 도비 50억 원과 시비 50억 원 등 총 100억 원을 투입해 바이오가스를 이용한 수소 생산 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목표 생산량은 하루 500kg 규모다. 연간 기준으로는 약 182톤의 수소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된 수소 일부는 수소충전소에 공급하고 일부는 수소 발전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에너지 자원으로 전환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사업에서 시민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될 변화는 시설 규모나 처리 능력보다 공간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환경기초시설 대부분이 지하에 설치되고 지상 공간은 시민을 위한 체육시설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지상에는 축구장 두 면과 야구장 한 면이 들어서고 주민 편익시설로 헬스장과 목욕탕을 갖춘 다목적체육관도 설치될 예정이다. 부지 전체를 보면 환경시설 위에 체육공원이 조성되는 구조다.
현장에서는 이미 축구장과 야구장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다목적체육관 건물 골조도 세워진 상태다. 겉으로 보면 대규모 체육시설이 조성되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하수처리시설과 음식물폐기물 처리시설 등 환경기초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환경시설을 지하화하고 지상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은 최근 도시 환경시설 설계에서 점점 확대되는 흐름이다. 도시 안에서 새로운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동시에 환경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다만 환경기초시설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전히 냄새 문제다. 시설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냄새가 발생하면 주민 민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용인특례시는 이를 고려해 대부분의 시설을 지하 2층 이하에 배치하고 음식물폐기물 투입 시설도 밀폐 구조로 설계했다. 차량이 들어와 폐기물을 투입할 때만 개폐하고 평소에는 닫힌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시 관계자들은 지상은 물론 지하 1층에서도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환경시설의 평가는 설계보다 운영 과정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시설 관리가 조금만 느슨해져도 냄새 민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용인레스피아가 시민들에게 어떤 시설로 인식될지는 준공 이후의 운영과 관리 수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용인특례시는 이 공간을 단순한 환경기초시설을 넘어 환경교육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부지 내에는 용인종합환경교육센터도 건립되고 있다.
센터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연면적 약 2700㎡ 수준이다. 사업비는 시비와 한강수계기금을 포함해 총 199억원이 투입된다. 건물은 에너지효율 1등급을 목표로 하는 넷제로 건축물로 설계됐으며 태양광 발전 등 친환경 기술도 적용된다.
준공 이후에는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점 시설로 활용될 예정이다. 환경기초시설을 단순한 처리시설이 아니라 환경교육과 시민 참여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구상이다.
환경기초시설은 도시가 성장할수록 더 많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들의 환경 기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시설을 짓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냄새와 소음, 주변 환경과의 조화, 시민 편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용인레스피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환경시설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기보다는 도시 공간 속에서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하수와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은 도시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반시설이다. 다만 그 시설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따라 시민들이 체감하는 도시 환경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용인레스피아 에코타운이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하다. 환경기초시설을 바라보는 도시의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을 더 이상 숨겨둘 수만은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