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강권하는 사회
카레를 사러 편의점에 갔더니 매운맛 카레 말고는 찾을 수가 없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요즘 매운맛만 찾아서 그렇단다.
매운맛은 식도와 위장에 매우 해롭다. 질병 유발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피부에 좋다는 그런 이유로 무시할 만한 정도의 해로움은 아니다.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매운맛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불닭볶음면 매운맛이 세계적인 인기라는 것도 알겠다. “그래서 어쩌라고?”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대세가 다 옳은 게 아니다. 이럴 때 꼭 맞는 말이다. 매운맛을 아예 피하는 사람은 식당에 앉자마자 맵지 않게 조리해 달라고 강조해서 말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음식문화인가?
전문점에서 안동찜닭을 배달 주문했다. 메뉴판에는 맛을 선택하는 기준이 없었고, 고향이 안동인 나로서는 매운 안동찜닭을 본 적이 없기에 무심코 주문했다. 착각이었다. 아예 먹기 어려운 매운맛이었다. 식당에 전화했더니 주인 말이 가관이다. “우리 집엔 매운 것 말고는 아예 없는데요?”란다. 그럼 전단지에 왜 매운맛이라고 밝히지 않았냐고 물으니, “요즘 다 매운맛 좋아하는데 왜 손님만 맵다고 그러냐?”라고 한다.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사람들이 안동찜닭을 찾을 때는 매운 찜닭이 아니라 보통 구수한 양념의 찜닭을 상상한다. 맵지 않은 안동찜닭이 오히려 비정상 메뉴가 된 것이다. ‘나는 좋은데, 너는 왜 안 좋냐?’라는 게 음식 취향에서 있을 수 있는 말인가?
음식은 취향일뿐더러 건강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음식과 약은 같은 뿌리’라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은 수천 년 내려온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 신조다. ‘매운 음식은 몸에 해롭다’라는 오랜 가르침이 이젠 무색해졌다. 매운맛 먹방 같은 콘텐츠를 보면 정말 기가 막힐 지경이다. 하긴 이 나라 전체가 매운맛 먹방 스튜디오라면 더 말할 것도 아니다. 이쯤 되면 매운맛을 먹지 않을 권리는 이미 침탈된 셈이다.
매운맛이 피부에 좋은 건 과학적 사실이지만, 피부를 위해 몸을 희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매운맛을 잘 먹는다는 것은 인내심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미각이 둔하다는 뜻이다. 미각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매운 음식 잘못 먹다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경우도 있다.
미각이 둔해서 극단적으로 매운맛 즐기는 사람의 식도와 위는 망가지고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고추와 같이 동물들이 따먹고 식겁해 보라고 자기방어 기전으로 축적된 독(毒)이 매운맛인데 기를 쓰고 그걸 먹겠다는 게 유행이나 문화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품격있는 한정식집에서 음식 자체가 매운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핫소스를 추가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고급 음식일수록 자극성 없이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 조리한다.
매운맛을 강권하는 문화는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