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다수를 위한 선택이 정의가 되는가
이훈미 국민의힘 경기도당 대변인 트롤리 딜레마 앞에서 멈춰 서는 정치 “그 한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정치는 종종 숫자의 언어로 설명된다. 몇 명이 혜택을 받는지, 예산 대비 효과는 무엇인지, 다수의 동의가 확보됐는지가 정책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군포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으로서 복지·보건·교육 등 민생 현안을 다루다 보면, 이러한 지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의 순간과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도덕철학에는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라는 사고실험이 있다. 통제 불능의 트롤리가 다섯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선로를 바꾸면 다른 한 명이 희생된다.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선택은 정당한가, 아니면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이다.
이 문제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한정된 재정 속에서 복지 대상의 범위를 정해야 할 때, 도시 기반시설 확충과 주민 생활권 보호가 충돌할 때, 의회는 매번 이와 유사한 판단을 요구받는다. 특정 사업은 누군가에게는 오랜 숙원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결정이 되기도 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재정 건전성 확보가 현재의 지원 축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흔히 “불가피한 선택”이나 “전체를 위한 결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실제로 정책 결정은 대안 간 비교와 선택의 연속이며, 모든 이해관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택이 얼마나 성찰적인 과정을 거쳤는지, 소외되는 목소리를 어디까지 고려했는지에 있다.
트롤리 딜레마에는 하나의 추가 질문이 있다. “그 한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정책 결정은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가 된다. 공공의 이익을 내세운 판단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특정 시민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희생으로 귀결된다면 그 무게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냉정한 선택을 포함하지만, 그 냉정함이 반복될수록 행정은 사람을 ‘대상’이나 ‘통계’로만 보게 될 위험이 있다.
의회에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판단은 효율적인가를 넘어 정의로운가, 그리고 이 결정의 결과가 나와 내 가족에게 돌아온다 해도 시민 앞에서 같은 설명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자문은 결정을 지연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더 어려운 대안을 찾게 만든다.
정의는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완성된 답이 아니다. 오히려 정의는 정책 결정자를 멈춰 세우는 질문에 가깝다. 결정 이후에도 보완이 필요한 지점은 없는지, 배제된 대상은 없었는지 점검하게 만드는 기준이다. 그래서 정의는 계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타인의 처지를 끝까지 고려하려는 과정 속에서만 비로소 그 윤곽이 드러난다.
정치는 결국 선택의 레버를 잡는 일이다.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는 레버를 당기기 전, 그 선택의 영향권에 있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지우지 않기 위해, 원칙의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가볍게 다루지 않기 위해, 의회는 계속해서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정의는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태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