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 침묵의 연쇄살인마 문상길 중위

얌전한 용모의 말 없는 양반집 막내 아들은 공산당에 경도되어 쉬지 않고 살인을 기도했다 이런 공산주의자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나라는 과연 정상적인 나라일까

2026-02-06     김동일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이 좌경화되면서 공산폭동은 민중항쟁으로 둔갑하고 있지만, 대구10월폭동, 제주4.3폭동, 여순반란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공산당의 3대 폭동이다. 이 중에 제주4.3폭동이 만 9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대한민국 국군의 좌경화였다. 군부 내부에 독버섯처럼 스며든 공산주의자들이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군을 지원하는 등의 반역을 자행함으로써, 제주도의 4.3 공산폭동은 근절되지 않고 만 9년이나 지속되었다.

제주4.3폭동에서 공산폭동에 이적 행위를 저지른 국군 3총사가 있다. 4.3시기 기준 계급으로 김익렬 중령, 오일균 소령, 문상길 중위 세 사람이다. 김익렬은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 김달삼의 계략에 넘어가 김달삼과 평화 회담 운운하며 진압의 시기를 놓치고 폭동의 비화에 일조하였다. 오일균 소령은 남로당 프락치로 육사 생도대장을 하며 육사 생도들을 공산주의에 오염시키고, 제주 9연대에서는 인민해방군과 밀통하며 정보와 무기를 제공했다. 수용소장을 하면서는 공산 분자들은 석방하고 양민은 계속 억류하다가 정체가 드러나 사형에 처해졌다.

문상길 중위는 4.3폭동 당시 제주 9연대 제3중대장으로, 9연대장 박진경 중령 암살을 주도한 남로당 프락치였다. 문상길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세상이 미쳐 돌아가다 보니 2021년 4월 제주KBS에서는 문상길의 암살 행위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제주도의 좌익단체들이 합동으로 문상길 사형 장소였던 경기도 망월산 인근에서 진혼제를 봉행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였다. 어찌 미화할 인간이 좌측에는 그렇게도 없더란 말인가.

문상길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일본군 하사로 복무하다가 육군사관학교 3기로 입학했다. 육사 3기는 좌익 세력이 가장 많았던 기수였다. 여순반란사건의 주모자였던 김지회와 홍순석, 제주4.3에서 박진경 연대장 암살 사건의 주모자 문상길, 여순반란에서 반란군에 동조했던 김응록 등이 좌익이었다. 그리고 여순반란의 진압과 6.25에서 용맹을 떨쳤던 송호림, ’타공(打共) 전선의 일인자‘로 유명했던 김창룡도 3기였다. 3기의 좌경화가 심했던 이유는 오일균 때문이었다. 오일균은 생도 대장으로 육사 담당 남로당 세포 책임자였기에 학생들의 결정권을 쥐고 영향을 끼쳤다. 나중에 오일균은 김창룡에게 체포되었다.

박진경 연대장 암살을 주도한 문상길 중위가 9연대로 부임한 것은 이치업 연대장이 부임한 후라는 증언으로 보아, 문상길 중위는 47년 4~5월경 제주에 입도한 것으로 보인다. 문상길은 4.3 발발 1년 전부터 9연대에서 활동하며, 모병 과정에서 좌익 청년 위주로 모집하여 남로당 세포들을 9연대에 부식하는 공작을 했다. 9연대 남로당 프락치는 고승옥, 문덕오, 정두만, 류경대 등 4명이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남로당 프락치가 고승옥이었다.

고승옥은 남제주군 대정읍 출신으로, 그간 알려진 것처럼 고승옥은 1948년 5월 20일 사병 41명이 모슬포부대를 탈영할 때 합류한 것이 아니고, 제주농업학교 주둔지에서 근무하던 중 6월 18일 벌어진 박진경 연대장 암살사건 이후 이에 발각될 기미를 보이자 2~3명과 함께 탈영 입산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6.25가 발발했을 때 고승옥은 제주인민해방군 4대 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인민군이 내려왔으니 나아가 싸우자는 소장파들의 주장을 반대하다가, 허영삼, 김성규 등 강경 소장파들의 산중 쿠데타에 의하여 고승옥, 백창원, 송원병 등의 지도부는 인민재판에 부쳐져 살해되었다. 이후 제주인민해방군 5대 사령관은 허영삼이 맡았다.

문상길은 5월 20일 9연대 경비대원 집단 탈영을 주도했다. 이때 탈영했던 경비대원들은 대부분 제주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강일영, 김인벽, 대정 출신 문덕우, 강기찬, 성산면의 강정호, 남원면 김중홍, 김태홍, 구좌면 김석종, 애월면 전사만 등, 43명이었다. 이들의 탈영 상황은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5월 20일 문 소위(문상길) 지시에 의하여 9연대 병졸 최 상사 이하 43명이 각각 99식총 1정을 가지고 탄환 14,000발을 트럭에 실어 탈출, 도중 대정 지서를 습격, 개(경찰) 4명, 급사 1명을 즉사시키고 지서장에게 부상시킨 후 서귀포 경유 상산하려고 했으나 그 연락이 안 되어 결국 22명은 피검, 탄환 다수 분실 혹은 압수당하고 겨우 4, 5일 후에야 나머지 21명이 아 부대와 연락되었음(이때에는 각각 99식 총 1정과 99식 탄환 100발 식만이 남아 있었음). 이때 연락이 안 된 원인은 문 소위가 우리에게 보낸 연락 방법과 탈출병들이 연락한 연락 방법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

문상길이가 병사들을 집단 탈영시킨 이유는 당시 적극적 진압 작전을 펼치려는 박진경 연대장에게 타격을 주어, 진압 작전에 장애를 주거나, 박진경 연대장을 전출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문상길은 제주 9연대에 남로당 프락치들을 심는 것 외에도, 상습적으로 연대장과 상관 살해 시도를 했다. 9연대 연대장은 초대 연대장부터 장창국 – 이치업 – 김익렬 – 박진경 - 최경록 순으로 이어진다. 초대 장창국은 47년 3월에 이임하였고, 그 후의 연대장들은 모두 문상길의 암살 시도에 시달렸다. 다만 김익렬만은 제외였다. 김익렬은 공산당을 이롭게 하는 유일한 연대장이었다.

9연대 두 번째 연대장이었던 이치업 소령은 제주에서 심각한 병을 앓다가 전출되었는데, 이치업 소령을 독살하려고 문상길 일당이 꾸민 짓임이 문상길 체포 후에 밝혀졌다. 이치업은 2001년 10월에 문상길이가 재판정에서 “내가 전 연대장 이치업 중령을 독살만 시켰다면 지금쯤 평양에 가서 최고 영웅 훈장을 탔을 텐데, 그걸 못해서 억울하다"라고 발언했다고 회고했다.

문상길의 직속상관으로 9연대 부대대장이었던 이세호 전 육군참모총장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문상길이 범인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았고, 며칠 후 체포된 문상길을 만났을 때 자신도 암살하려 했다는 고백을 듣고 더 놀랐다“고 그의 회고록 ‘한길로 섬겼던 내 조국’에서 밝혔다.

박진경이 암살당하고 후임으로 최경록 중령이 9연대장으로 부임했다. 다섯 번째 연대장이었다. 문상길은 최경록 연대장까지 암살하려고 두 번이나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개 때문에 실패하였다. 박진경의 암살로 신변의 위험을 느낀 최경록은 잠잘 때 항상 개를 옆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박진경 연대장은 대령 진급 축하연이 열렸던 1948년 6월 18일 새벽에 문상길 중위가 주도하는 남로당 병사들에 의하여 암살당했다. 문상길 중위를 비롯해 손선호 하사, 신상우 일등중사, 배경용 하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 강승규 하사, 양회천 이등상사, 신상우 일등중사, 강자규 중사 등이 체포되었다. 신상우는 부대 정문에서 연대장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강자규는 배경용, 손선호에게 알리고, 배경용은 손전등으로 불을 밝혀주고, 손선호는 잠자는 연대장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문상길, 손선호, 배경용, 신상우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두 사람은 감형되고 문상길 손선호는 총살형에 처해졌다.

암살범들은 박진경 연대장의 강경 진압에 불만을 품고 연대장을 암살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5월 6일에 갓 부임한 연대장에게 강경 진압이라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박진경 연대장 암살은 이미 5월 10일에 남로당 상부에서 결정된 것임이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에서 밝혀진다. 이런 내용이었다.

5월 10일 제주읍에서 김달삼과 오일균의 비밀 회동이 있었다. 남로당 중앙당에서 파견된 올구의 지시로, 남로당 측 김달삼 군책, 조책 등 2인과 국방경비대 측 오일균 대대장, 정보관 이 소위, 부관 등 3인이 모인 5인 회담이었다. 여기에서 ‘특히 대내 반동의 거두 박진경 연대장 이하 반동 장교들을 숙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박진경 암살은 박진경 부임 4일 만에 남로당 중앙당 올구의 지시가 내려지고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과 국방경비대 프락치들이 모인 회합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반역 암살범 문상길은 좌익들에 의해 목불인견의 수준으로 미화되고 있다. 경북 안동의 남평 문씨 얌전한 막내 아들이었다느니, 기독교인으로 신앙에 따른 양심이었다느니, 민족 반역자를 처단했다느니 하는 간첩 수준의 망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문상길은 왜소한 체구에 머리가 비상했다고 한다. 문상길이 체포될 때 몸에는 빨간 부적을 착용하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나오는 빨간 물감 때문에 부적이 발견되었고, 추궁이 이어지며 범죄가 드러났다. 왜소한 용모에 얌전한 막내 아들의 용모였지만 정작 그의 심중은 살인 기도를 멈추지 못했다. 이세호 전 참모총장도 뜻밖의 사실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중인격은 공산주의자들의 본색이다. 박진경 연대장이 총에 맞았을 때 박진경의 시신을 매만지며 울고 있던 위생병은 박진경 연대장에게 방아쇠를 당겼던 손선호였다. 얌전한 용모의 말 없는 양반집 막내 아들은 공산당에 경도되어 쉬지 않고 살인을 기도하는 사이코 연쇄살인마였다. 이런 공산주의자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나라는 과연 정상적인 나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