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용수 국가책임은 어떻게 작동할까

기자수첩 한마디 "법은 통과됐고, 계획은 이미 존재한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과 검증이다"

2026-02-01     김병철 기자
김병철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국회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처리하면서, 반도체 정책을 둘러싼 논의의 무게중심은 한 단계 이동했다. 법 제정 자체를 둘러싼 찬반의 문제에서, 이제는 이 법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것인지, 그리고 그 작동이 산업 현장과 지역에 어떤 신호를 줄 것인지가 핵심 질문으로 떠올랐다.

이번 법 통과에 따른 용인시의 대응은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상일 시장은 법 통과를 “반가운 일”이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유감”이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상반된 감정이 함께 담긴 이 발언은, 반도체특별법이 가진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법에는 분명한 문장이 있다.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하는 전력, 용수 공급을 포함해 폐수 처리, 도로 건설 등 핵심 산업기반시설을 국가 책임으로 신속히 조성·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비용 역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국가 등이 부담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는 반도체 산업 인프라 조성을 개별 기업이나 특정 지자체의 부담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국가 차원의 선언에 가깝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에서 전력과 용수 문제는 단순한 행정 사안이 아니었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 용수 확보 가능성은 곧 산업단지 조성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작동해왔다. 이 과정에서 ‘지방이전론’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이는 용인이라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반도체 전략의 신뢰도와 직결된 논쟁으로 확산됐다.

용인시는 인프라 조성이 국가 책임으로 명시된 점에 주목하며 실질적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요구가 새로운 정책 수립이나 추가 재정 투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는 이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국가수도기본계획을 통해 용인 이동·남사읍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단에 대한 전력·용수 공급 계획을 수립해 둔 상태다. 즉, 논의의 출발선은 ‘계획의 부재’가 아니라 ‘계획의 이행’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이전론이 반복적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특정 지역의 입지 경쟁 문제라기보다, 국가 계획이 현장에서 얼마나 확실한 신호로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계획이 존재하더라도, 그 이행 시점과 방식, 책임 주체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으면 불확실성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상일 시장이 “정부가 전력·용수 공급 계획 이행을 천명해야 한다”고 말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천명이라는 표현은 법률 문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재확인하고, 계획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산업계와 지역사회에 제공하라는 요구로 읽힌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선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공정 설비, 연구개발, 인력 확보 모두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된다. 이 과정에서 전력과 용수 같은 기반시설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다. 따라서 국가가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계획이 실제로 집행될 것이라는 확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반도체특별법의 또 다른 쟁점은 기술 연구개발(R&D) 분야에 대한 주52시간제 적용 문제다. 시와 산업 현장에서는 반도체 초격차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R&D 시간 규제 완화가 이번 법안에 담기지 못한 점에 대해 짙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이 발언은 노동 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도체 연구개발은 공정 전환, 미세화 경쟁, 신소재 적용 등 시간과의 싸움으로 진행되는 영역이다. 특정 시점의 실험 결과나 공정 안정화 단계에서의 집중적인 연구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의 ‘996제’, 대만 TSMC 연구개발 인력의 장시간 근무 사례를 예로 들었지만, 이는 단순한 근무 형태의 비교라기보다 경쟁 환경의 속도를 설명하기 위한 맥락에 가깝다. 

물론 노동시간 문제는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산업 경쟁력은 동시에 고려돼야 할 가치다. 다만 반도체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기술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예외 규정조차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는 점은, 산업 정책과 노동 정책 사이의 접점이 아직 제도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상일 시장이 요구한 보완입법은 연구개발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되, 그 범위와 조건을 명확히 설정하자는 문제 제기다. 이는 산업계의 요구를 무제한적으로 수용하자는 주장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제도권 안에서 관리 가능한 예외를 설계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반도체특별법은 국가가 반도체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인프라와 지원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법은 방향을 제시할 뿐, 실제 성과는 행정과 입법의 후속 조치에서 결정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전력·용수 공급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법률에 국가 책임이 명시됐다는 사실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계획의 실행 여부에 달려 있다. 정부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단계에서 책임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용인시는 법 제정 이후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시장은 법 통과를 계기로 지방이전론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논쟁을 확대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라, 오히려 논쟁을 끝내기 위한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조건은 단순하다. 정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과 계획 이행이다.

AI 시대의 도래는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다. HBM을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 증가는 이미 현실이 됐다. 여기에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경쟁까지 겹치면서, 기술 개발의 속도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지표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반도체특별법은 하나의 이정표다. 다만 이정표를 세웠다고 해서 목적지에 자동으로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전력과 용수, 연구개발 제도라는 두 개의 축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관건이다.

기자수첩이라는 형식은 평가보다 질문을 남기는 데 더 적합하다. 반도체특별법 이후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국가가 책임을 명시한 전력·용수 공급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현장에서 확인될 것인가. 기술 연구개발 분야의 제도적 보완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다시 국회로 돌아올 것인가. 법은 통과됐고, 계획은 이미 존재한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과 검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의는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산업 정책이 어떻게 신뢰를 구축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 시험의 결과는 법 조문이 아니라, 행정의 시간표와 입법의 후속 선택에서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