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거부하면 멸종한다!
노조가 마주친 난공불락의 적은 로봇
센 놈들만 잡아먹는 최상위 포식자들이 가장 먼저 멸종한다는 것은 고등학생들도 아는 법칙이다.
그들은 차상위 포식자들만을 노린다. 그를 제압함으로써 권력을 누리기를 원하고, 꼭대기에 군림하다가 생태계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면 제일 먼저 굶주림에 직면하고, 결국 멸종한다. 엄청난 이빨을 자랑하던 1만 년 전 검치호랑이 스밀로돈이 그랬고, 백악기의 공룡들이 그랬다.
지금 우리 시대의 노동조합이 그렇다. 노동자의 기본권과 이익을 대변한다는 목적은 아랑곳없고. 자신의 일터인 기업에서 경영진의 목덜미를 물고 이권을 챙기는 포식자로 군림해 온 노조들이다. 마치 특정 먹잇감을 제압하기 위해 특화한 최상위 포식자와 닮았다. 산업혁명 이후 그들의 권력은 점점 자라나 이제 티핑-포인트에 이르렀다. 공존을 거부해 온 그들이다.
그들이 마주친 난공불락의 적은 그 어떤 권력자도 아니다. 사람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로봇이다. 역시 어느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들이 그들의 오만과 불손에 철퇴를 내려치는 형국이다. 지금 그들은 로봇을 도입하면 안 된다고 또 난리법석을 떤다.
하긴 기업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노조가 로봇을 반대하면 폐업하고, 로봇들과 잘 의논해서 새 기업을 차리면 된다. ‘90년대 초반 무렵 생산라인 자동화가 한창일 때 이미 다 겪은 일이다. 자동화를 하지 않으면 경쟁을 할 수 없는 판국에 그것을 막을 방도가 있겠는가?
그들이 이 권력을 계속 누리는 길은 기업과 공존하는 데 있다. 로봇이 판을 치든 말든, 기업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생산직이 줄어들면 관리직으로 전환하고, 관리 업무도 AI가 장악하면 AI를 다루거나 AI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게 이 세상의 생태계 법칙이다.
노조가 뭐라고 이 엄혹한 생태계를 거부할 것인가? 기업 안에서 사사건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개입해 온 노조로서는 로봇 도입 결정까지도 막아 보려는 것이다. 지극한 넌센스다. 노조가 경영진이나 주주총회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붙잡고 버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