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갈등 속 남미 원자재 공급망,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

2026-01-08     손윤희 기자

 

콜롬비아의 커피, 칠레의 구리, 브라질의 대두 등 남미와 카리브해의 주요 원자재 수출국이 최근 지정학적 긴장과 미국의 군사·정치적 개입 가능성으로 인해 전 세계 원자재 공급망의 꼬리위험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엔 라틴 아메리카 경제위원회(ECLAC)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의 7.3% 수준, 인구 비중도 8% 내외에 불과하지만 곡물, 구리, 리튬, 석유 같은 원자재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축이다. 최근 논의되는 미국의 '돈로 독트린'(먼로 독트린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이름의 합성어) 등 서반구 내 미국 개입 강화가 잦아질 경우, 남미 원자재 시장에서 공급망 차질과 리스크 프리미엄 급등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작전과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먼로 독트린의 연장선상에서 정당화하는 가운데, 남미 각국의 주요 원자재 시장은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이해관계가 거칠게 교차하는 첨예한 지정학적 무대로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과 전략 광물을 보유했으며, 최근에는 중국·러시아 국영기업의 영향력이 깊이 뿌리내렸다. 이번 미국의 움직임이 마약 퇴치와 민주주의를 표면적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미국 주도의 자원 체제로의 회귀 의도가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러한 논리가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로 확대될 경우 남미는 패권국 대리전이 현실화되는 전선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1960~1970년대 칠레에서의 지정학 불안에 따른 구리 가격 급등 사례와 같이 남미 발 지정학 리스크가 원자재 시장에 미칠 영향력은 과거 역사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콜롬비아의 경우 2024년 미국에만 약 2억4400만㎏의 커피를 수출해 커피 교역의 7%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석탄 수출액(2023년 기준 80억~92억 달러)은 전체 수출의 16%, 세계 석탄 시장 점유율은 4~5% 수준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콜롬비아 정부의 관계는 악화 일로에 있다. 트럼프는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마약을 미국에 판다'며 공개 비난했고, 군사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괜찮게 들린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긴장이 베네수엘라 침공, 카리브해 군사 확전으로까지 격화될 경우, 콜롬비아산 커피·석탄의 국제 유통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지중해 위험은 보험료와 운송비 인상으로 이어져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을 높일 수 있다.

브라질은 2024년 대두 수출 9900만~1억 톤, 2025년 1억200만 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며, 2024년 수출분의 73~76%가 중국행이었다. 세계 2위 옥수수 수출국인 브라질은 2025년 옥수수 수출이 41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브라질 좌파 정부와 공식적인 불화 상태이며, 룰라 대통령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작전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가 브라질 농산물에 대한 제재 가능성으로 이어질 경우, 주요 곡물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이유이다. 미국 내 남미 견제가 중국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한 배경이라는 평가도 등장하고 있다.

칠레, 페루 등은 전 세계 구리 매장량의 3분의 1 이상을 점유하며, 칠레는 2024년 구리 생산량 550만 톤으로 세계의 24%를 담당했다. 미국의 칠레산 구리 수입은 2024년 62억 달러로 집계되며, 2025년에는 최대치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인 리튬이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에 집중되어 있어, 2024년 미국 리튬 수입 중 칠레산 비중은 61.7%에 달했다. 만약 남미에서 지정학적 혼란이 한꺼번에 닥칠 경우, 구리·리튬 등 에너지 전환 핵심 금속의 단기 가격 급등과 관련 산업의 투자비 상승이라는 위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원자재 공급 차질, 리스크 프리미엄 상향, 물류비·보험료 급등 등 다양한 채널로 전 세계 소비자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