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후보자로 보는 대한민국의 가벼움
유승민, 이혜훈, 그리고 이혜훈을 옹호하고 나서는 이준석까지, 정통우파가 사이비 진보에게 밀리고 종북 세력에게까지 타박을 당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국힘당 이혜훈 전 의원이 이재명 정부의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목되면서 황당함에 빠진 것은 국힘당이나 민주당만이 아니다. 국민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 뱉은 소신이 오늘의 헛소리가 되는 것은 특히나 수준 미달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이혜훈의 경우는 황당하고 민망함을 넘어서서 분노가 먼저 치솟는다.
이혜훈은 보수우파 진영의 3선 정치인이다. '보수의 여전사'는 한때 그녀의 별명이었다. 우파에서 태어나 우파에서 잔뼈가 굵었고 우파가 키워낸 인물이었다. 이혜훈은 어제저녁 해 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재명 타도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깃발을 바꿔 드는 실력 또한 전광석화였다. 가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솜씨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체면도 말이 아니다. 어제저녁 황혼이 지는 무렵까지만 해도 이재명은 내란 세력 단죄를 외치다가, 오늘 새벽 첫닭이 울기도 전에 '내란 세력'을 장관 후보자로 지목했다. 보수우파에 대한 이재명의 조롱인가, 아니면 이재명의 기억상실증인가. 아니면 경제 실패에 대한 속죄양의 대비책인가.
이혜훈의 시아버지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생전에 아들보다 며느리가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본 것은 그녀의 능력이었을까, 아니면 말 갈아타는 기회주의 실력이었을까. 이혜훈의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시절 그녀의 사수는 유승민이었다. 그때 유능한 사수로부터 일찌감치 배신의 미학을 배웠던 것일까.
유승민, 이혜훈, 그리고 이혜훈을 옹호하고 나서는 이준석까지, 누구였을까, 봄바람에도 산들거리는 이렇게도 가벼운 분들만을 골라 보수우파로 데려왔던 사람은. 정통우파가 사이비 진보에게 밀리고 종북 세력에게까지 타박을 당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허수아비들을 전사로 모셔 왔으니, 보수우파는 종이 호랑이였던 것이다.
얼마 전에는 삼성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 시킨 전직 임직원들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삼성전자가 5년에 걸쳐 1조 6천억을 투자한 국가 핵심 기술이었다. 이들은 기존 연봉보다 더 높은 조건의 제안을 받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 3선 의원도 영혼을 파는데, 삼성 기술이 무슨 대수인가라는 산업스파이 임직원들의 항변이 들리는 듯하다.
엊그제는 북한 해커로 추정되는 인물의 지령을 받고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현역 장교에게 징역형이 확정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현역 장교는 수억 원어치의 비트코인을 받고 이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금전과 출세에 눈이 멀어 소신을 굽히고 영혼을 팔아버려 결국 뇌가 없고 영혼이 없는 군인과 기업가,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기회주의가 대한민국을 능욕하고 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병자호란에서 주전파였던 김상헌은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길을 안내해 주는 뱃사공을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눈다.
"청병이 곧 들이닥친다는 데, 너는 왜 강가에 있느냐?"
"갈 곳이 없고, 갈 수도 없기에…."
(중략)
"물고기를 잡아서 겨울을 나려느냐?"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볼까 해서….
(중략)
강을 건넌 후 김상헌은 다시 묻는다.
"나는 남한산성으로 간다. 나를 따르겠느냐?"
"아니오. 빈집에 어린 딸이 있으니…. 소인은 살던 자리로 돌아가겠소이다."
조선시대의 뱃사공 민초에게는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없었다. 한반도 땅에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이 들어선 것은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들어선 20세기가 되어서였다. 조선시대의 민초에게 그들을 다스리는 것이 임금이건 청나라 군대건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저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약간의 곡식이라도 주는 쪽이 그들의 주군이었을 것이다. 김상헌은 떠나면서 이 불쌍한 뱃사공을 베어버리고 만다.
임금은 군림하되 복지에는 무심했던 반도 땅에서 민초는 각자도생해야 했다. 병자호란에서 청나라 군대의 길 안내를 하고, 6.25에서 윌리엄 딘 소장을 북한군에게 밀고하여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이 민초들의 삶이었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적국에 기밀을 팔고, 반대파에 영혼을 팔아 탐욕을 채우는 사람들을 보니, 위선과 배신이 대한민국의 DNA였던 모양이다.
이혜훈은 이재명이 주장하던 재난지원금과 민생회복쿠폰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하던 사람이다. 특히 이혜훈은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가했던 인물이다. 아무리 아녀자 의원이라 해도 그 변절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나라가 망국으로 치닫는 것이 민주당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이혜훈을 보니 어중이떠중이 모아놓은 국힘당에도 그 망국의 책임이 적지 않다. 민주당을 박멸하기 전에 먼저 국힘당을 불사르자. 그게 구국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