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혀진 정의에 대한 분노
배우 조진웅 논란이 정치 진영으로 번졌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는 뒷전이고, 변죽만 울리니 답답하다.
언론과 정치계에서는 조진웅 논란의 본질에 대해 학생 시절 소년원에 다녀온 범죄 경력을 문제 삼고 있다. 청소년 때 범죄를 지금 파묘하는 게 맞냐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이슈가 되지만, 국민의 분노는 거기서 비롯된 게 아니다.
만약 그가 단지 어두운 과거를 가진 배우였다면 그 나름대로 비난을 받았을 테지만, 이처럼 나라를 들썩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그런 범죄가 일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은 배우의 과거나 사생활에 대해 이 정도로 분노할 이유가 없다.
본질은 무엇인가. 그는 광복절 기념식에서 마치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광복군 투사라도 되는 양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하고,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특사로까지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서 얻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팔고 다녔던 것이다. 거기에 이재명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숟가락을 얹었고, 새롭게 밝혀진 그의 이미지는 흉악한 범죄자의 그것이라는 점에 국민은 분노하는 것이다.
특히 광복절 기념식에서 그는 국가에 대해 매우 엄숙하고도 숭고한 정의감을 표현하기 위해 영혼을 쏟는 열정을 보여줬다. 그 자신도 이쯤 되면 어릴 적 저지른 범죄 정도는 다 덮고도 남겠지, 이렇게 안심하지 않았을까?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폭발성이 강한 위험한 임계점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가장 분노한 이들은 그로부터 피해를 당하거나 억울함을 느꼈던 학창 시절의 급우들이었다. 그들로부터 폭로전이 이어졌던 것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사회적 정의로움과 대척점에 서야 할 인물이 국민 대표해 정의로움을 맹세한다? 도저히 보고 있기가 어려웠던 이들이 입을 열었고, 그에 공감하는 분노의 댓글과 여론이 폭발한 게 이 사태의 본질이다. 정의에 대한 그의 과몰입이 주변인들의 허탈과 분노에 불을 지른 셈이다.
그의 본명은 조원준이었으며, 조진웅이란 이름은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라 한다. 그는 과거 한 방송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다 쓰면 인생에 대해 조심하게 될 것같아 예명으로 썼다고 말했다. 그가 조심해야 할 대상은 배우가 되기 이전의 어두운 과거가 아니었다. 유명 배우가 되고 나서 정치계가 뒤집어씌운 과도한 위선의 허울, 그리고 자신에게 피해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속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버지 이름을 더럽힌 것이다.
아니, 정의를 더럽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