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 감시는 끝났다, 이제는 ‘입법 실험’이다...용인특례시의회에 거는 기대
"행정이 아니라 입법에서 먼저 달라져야" 특례시 용인, 입법 실험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특례의 내용이 채워진다 숫자 채우기식 발의에서 벗어나, 실패까지 감안한 조례 실험이 도시의 미래를 바꾼다 행정사무감사와 조례를 잇는 선순환을 얼마나 촘촘히 만드느냐에 도시의 수준이 갈린다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특례시는 단순히 도시의 외형이나 직급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행정적 명칭이 아니다. 지방정부가 기존 제도 틀 안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정책을 먼저 실험해 보라는, 일종의 ‘과제’에 가깝다. 중앙정부와 광역·기초자치단체 사이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그 결과를 다시 국가 정책으로 확장하는 실험적 역할이 기대되는 곳이 바로 특례시다. 그렇다면 특례시의회가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하는 영역도 결국 입법이다. 행정은 중앙과 광역의 규정을 따라야 하지만, 입법은 지역의 문제를 새로 발견하고 특례시의 기능을 가장 실질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근 용인특례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를 지켜보면, 이전과는 다른 결의 변화가 감지된다. 단순히 집행부를 질타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적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근본 원인이 제도의 빈틈에 있는지, 조례가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탓은 아닌지까지 짚어보려는 질문이 늘고 있다. “왜 이렇게 했느냐”는 과거형 추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기준을 어떻게 고쳐야 하느냐”, “현장의 부담을 줄이려면 어떤 절차를 조례에 새로 넣어야 하느냐”는 식의 질문이 이어진다. 감사가 단순한 ‘감시의 장’을 넘어 이후 조례 개정·신설을 준비하는 출발점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조례 발의에서도 긍정적인 흐름이 보인다. 지방의회 조례는 흔히 “다른 지자체 조례를 베껴온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용인특례시의 최근 조례안을 들여다보면, 지역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려는 시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급증, 물류 시설 밀집에 따른 안전 문제, 지하철·버스·도로망의 동시 확장으로 발생하는 교통 혼잡 등 용인만의 도시 구조가 조문에 담기기 시작했다.
안전·환경 관련 조례에서는 물류센터 주변 차량 동선 관리나 소음·미세먼지 기준을 보다 정밀하게 설정하는 조항이 등장하고, 청년·돌봄 정책 조례에서는 거주·통학 구조를 고려한 지원 대상 세분화가 이뤄지고 있다. 조례의 ‘지역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조례 한 건을 바라보는 의원들의 관점 변화도 눈에 띈다. 과거에는 한 회기 동안 몇 개의 조례를 발의했는지가 평가 기준처럼 여겨졌다면, 이제는 ‘얼마나 현장에서 작동하느냐’를 더 중시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의원들은 상임위 논의에서 단순한 선언형 조례가 아니라, 시가 즉시 적용할 수 있는 절차·기준·평가 체계를 조례 안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보여 왔다. 이 과정에서 집행부와의 협의는 더 촘촘해지고, 시행 뒤 평가 조항을 넣어 조례가 스스로를 점검하도록 만드는 구조도 만들어지고 있다. 조례의 밀도와 실효성을 높이려는 이런 움직임은 특례시의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제안이다. “특례시답게, 입법에서 더 과감한 실험을 해 보자”는 것이다. 특례시가 가진 권한은 생각보다 넓고, 조례가 할 수 있는 역할 역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다. 상위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기준을 더 엄격하게 설정할 수도 있고, 도시 특성에 맞는 절차와 의무를 따로 설계할 수도 있다. 행정이 기존 체계에 묶여 있다면, 입법은 오히려 그 틀을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앙정부의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이 먼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방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용인은 특히 입법 실험의 효과가 클 수밖에 없는 도시다. 지난 10년간 인구 증가 속도는 전국 최고 수준이었고, 제조업·물류·서비스업이 동시에 확장되는 드문 도시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GTX와 남북 방향 도시철도, 동서 교통축이 잇따라 추진되면서 생활권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변화 속도가 빠른 도시는 기존 법·제도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생활 인프라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대형 공사·물류시설 주변 주민 보호를 어떻게 강화할지, 플랫폼 노동자·1인 가구·고령층·청년층이 동시에 늘어날 때 필요한 돌봄·주거 기준을 어떻게 설계할지 등은 중앙이 일괄적으로 답을 줄 수 없는 영역들이다. 이런 공백을 메우는 가장 빠른 도구가 조례이고, 그 조례의 출발점이 바로 행정사무감사다.
물론 입법 실험에는 위험이 따른다. 조례가 현실보다 너무 앞서가면 집행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고, 예산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험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장치는 이미 여러 지방정부에서 활용되고 있다. 용인 역시 이를 제도 안에 녹여낼 수 있다. 조례에 ‘시범기간’을 명시해 일정 기간 우선 시행한 뒤 평가를 통해 지속 여부를 결정하거나, 한시 조항을 두어 시행 결과에 따라 조문이 자동으로 조정되도록 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조례가 스스로를 점검하고 수정하도록 설계하면 실험의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정책 혁신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결국 특례시의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행정사무감사에서 드러난 문제의식을 조례로 연결하고, 그 조례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필요할 경우 다시 제도를 손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구조를 갖춘 의회는 단순히 집행부를 감시하는 기관을 넘어, 지역 발전의 방향을 설계하는 ‘정책 생산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금 용인특례시의회가 보여주는 변화는 적어도 그 출발선에 서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례라는 지위는 외부에서 내려온 완성된 ‘권한 세트’가 아니다. 지역이 스스로 어떤 기준과 절차를 만들 것인지에 따라 채워지는, 비어 있는 그릇에 가깝다. 그 빈 그릇을 무엇으로 채울지, 용인을 어떤 모델 도시로 키워낼지는 결국 의회의 입법 역량에 달려 있다. 입법에서의 실험과 도전이 많아질수록, 용인은 ‘특례’라는 이름에 걸맞은 도시로, 나아가 다른 지방정부가 참고하는 정책 레퍼런스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행정사무감사장에서 나온 한 줄의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조례로 옮기는 집요함, 그리고 한 번 만든 조례를 끝까지 따라가며 고쳐 나가는 냉정함이다. 그 집요함과 냉정함이 모일 때, 비로소 “특례시답게 입법에서 먼저 미래를 열어가는 용기”라는 말이 수사가 아니라 용인의회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문장이 될 것이다.
용인특례시의회가 그 문장을 스스로의 기록으로 증명해 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