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만 않았어도 초강대국 갔을 것!

2025-07-29     이동훈 칼럼니스트
노조

정치 수준이 이 정도로 처참한 것 치고, 선진국 대열에 낀 것만으로도 이 나라는 정말 대단하다.

이는 순전히 기업들의 공로다. 무거운 모래주머니 차고 국제마라톤에서 메달을 딴 격이다. 전혀 무리한 비유가 아니다. 물론 여기에 국민의 공로가 없진 않으나, 이 최악의 정치판을 만들고, 노조를 기반으로 기업 발목을 잡은 일부의 주체란 점에서 메달 시상대에 국민이 설 자리는 없다.

‘싸움’, 그것도 국민들끼리 죽일 듯이 물고 뜯는 싸움에 열중하는 나라가 강대국에 올라선 예는 유사 이래 없었다. 만약 정치 진영을 나눠 이념 갈등으로 반목하는 영·호남을 연방제 또는 두 나라로 분리했으면 어떤 결과가 왔을까? 아마도 아주 높은 확률로 둘 중 하나나 둘 모두가 초강대국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정치적 억지를 부리는 정치인들 몇몇만 퇴출시켰어도 역시 초강대국이 됐을 것 아닌가. 그들의 억지와 생떼는 지역갈등에 기반을 두며, 그것을 용인한 국민성으로부터 갈등은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이나 중국의 외세 개입을 탓할 계제도 아니다. 민감한 이해관계가 걸린 인접국의 갈등과 혼란에 개입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자초한 외세 개입이다.

또 공직자들은 어떤가? 그들만의 리그는 처절한 싸움으로 점철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인들과 야합하여 나랏돈이나 공적 자산이 마치 자기 것인 양 핑계만 생기면 퍼주며 선심을 쓰고, 정치적 목적을 챙겨간다. 전국에 지자체마다 개점 휴업한 기념관과 전시관이 수천 개에 이른다. 용도가 불분명하고 국토만 망가뜨린 도로나 공원이 몇 개인가? 누가 재정을 더 낭비하느냐의 치열한 싸움터가 바로 이 나라 공직사회다.

이 공직자들은 정확한 의미로 공익에 대한 배임 혐의자들이다. 그들에게 나랏돈을 맡기고, 나랏돈에서 월급까지 주는 것은 지나친 호의다. 그들은 더 이상 국가나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국민이 그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해주기 때문이다. 최소한 실패한 개발사업에 대한 책임을 묻고, 무책임한 검토로 인해 낭비한 예산의 0.001%나마 공직자의 연금에서 환수하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 재정을 튼튼하게 지킬 수 있다. 지금은 국가 재정을 낭비하기 위한 예산 따먹기 전쟁이 최고조에 올랐다.

이 싸움의 가장 큰 책임은 이 나라 지성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언론을 포함하여 오피니언 리더 그룹은 지성이나 균형감각을 버린 지 오래다. 그들은 국가 내부 갈등을 자신의 영달을 위한 배경쯤으로 인식하고, 펜대를 버리고 갈등을 앞장서 조장하는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 그들은 이 망국의 싸움에 끼어든 선의의 패거리가 아니다. 악의적인 갈등 조장자들이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나 공익, 또는 명분조차도 아니다. 단지 자신의 말 한마디가 누구에게 좋게 들리고, 누구에게 이로우며, 누구를 공격할 수 있는가, 그것만을 생각한다. 오로지 거기에만 골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후대 역사가들은 그들을 지성인이라 평가할까? ‘선동가(煽動家)’라고 부르지 않을까?

자칭 지성인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반성하라. 역사의 죄인이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