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악마적인 네타냐후의 하도급 업자 ?
- 미국의 이란 전쟁 개입 : 미국과 직접 분쟁 없는 전쟁 - 이스라엘 혼란은 ‘정책 그 자체’ -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자와 ‘이논 계획’ - 이스라엘, 철저하게 목적을 속이는 술수 - 생존 위한 밀가루 자루 대신 죽은 친척 어깨에 메고 - 이란의 핵 개발 의욕 상승과 새로운 동맹 - 국제 사회의 무관심 혹은 이스라엘 지지
아래의 글은 “재난의 아이들 :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미국으로 가는 여정”(Children of Catastrophe: Journey from a Palestinian Refugee Camp to America)을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저자이며, 특히 아랍세계문제(Arab world issues)에 대한 논평을 쓰고 있는 자말 칸지(Jamal Kanj)가 미국의 ‘카운터 펀치’에 25일(현지시간) 기고한 글을 중심으로 펼친 내용입니다.
* 미국의 이란 전쟁 개입 : 미국과 직접 분쟁 없는 전쟁
러시아와 키이우 전쟁이나 중국의 대만 영유권 주장과는 달리, 워싱턴의 이란 핵시설 공습은 미국과의 국가적 분쟁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그의 로비 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가 하도급 계약을 맺은 프로젝트(a project subcontracted)이다. 자말 칸지는 “트럼프는 아첨과 드라마에 중독된 대통령으로 허세에 휩싸여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하도급 업체’(ideal Israeli subcontractor)임이 입증되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네타냐후는 수십 년간 미국 정치를 조종해 왔다. 칸지는 2002년, 네타냐후는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면 ‘장담하건대 젊은 이란인들이 성직자들을 전복할 것’이라고 의회에서 장담했다. 이라크의 ‘체제 변화’가 시작되었고, 그 후 혼란이 이어졌지만, 이란에서는 어떤 봉기도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23년 후 네타냐후는 ‘중동의 모습’(the face of the Middle East)을 재편하려는 자신의 환상에 미국을 끌어들이는 데 다시 한번 성공했다.
칸지는 네타냐후의 그 성공에 대해 “악마적인 업적”(demonic feat)이라고 불렀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전쟁에 맞서 싸우는 동안, 이 지역은 혼란에 빠지고,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에 도전할 수 없는 실패 국가들을 육성하는 이스라엘의 안보 독트린(security doctrine)을 강화해 주고 있다.
* 이스라엘 혼란은 ‘정책 그 자체’
이란과 이스라엘의 휴전이 공고화되지 못하면서, 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이 이 지역에서 경쟁하는 핵 강국의 출현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영원히 분열된 중동에서 독점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혼란(정권 교체)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혼란은 ‘정책의 부산물’이 아니라 ‘정책 그 자체’라는 진단이다. 무정부 상태는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전략 그 자체이다. 바로 이스라엘의 사업 모델(business model)이라는 것이다.
*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자와 ‘이논 계획’
불안정화된 중동은 1982년 히브리어로 출판된 ‘이논 계획’(Yinon Plan)에 명시된 시오니스트의 계산된 목표이다. ‘이논 계획’은 지역적 우위 혹은 지배력을 보장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전략을 말한다. 이 계획은 오늘날의 ▷ 가자지구 대량 학살(genocide) ▷ 서안 지구 점령 ▷ 유대인 전용 식민지 확장 ▷ 이스라엘 유대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체계적 고착과 같은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적 감시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이논 계획’에 따르면, 중동의 불안정은 이스라엘의 실존적 위협이라는 담론을 강화하는데, 이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열렬히 지지하는 내용이다. 이 담론은 수십억 달러의 미국 납세자 자금을 빼돌리고, 이스라엘의 호전적인 선제공격, 군사화, 그리고 끝없는 전쟁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된다.
* 이스라엘, 철저하게 목적을 속이는 술수
이웃 국가들의 실패가 분열, 내전, 경제 붕괴, 또는 종파 간 폭력으로 점철되면,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은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에서 벗어나 ‘지역 불안정’으로 쏠리게 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이 악의적인 국가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라, ‘강력한’ 이웃 국가들의 ‘불행한’ 결과로 여겨지는 ‘배경 소음’(background noise)으로 전락 된 상황에서 처벌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따라서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수단, 그리고 이제는 이란과 같은 국가들에 끊임없는 혼란을 조장하는 것은 장기적인 전략적 목표, 즉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어떠한 단일 전선의 부상도 막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분열된 중동은 지배하기가 더 쉬울 뿐만 아니라, 세계가 무시하고 외면하기 더 쉽다는 인식이다.
예를 들어, 가자지구에서 세계는 ‘집단학살’을 오랫동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지역으로 간주해 버리고, 또 그렇게 인식하게 하고, 이 지역의 또 다른 사건으로 치환(置換)시킨다. 돈세탁(Money laundering)처럼 ‘사건 세탁’(incident laundering)이라고나 할까. 트럼프 행정부가 기아와 집단학살을 정상화하는 모습을 침묵 속에 지켜보고 있다. 미국이 지원하는 이른바 가자 인도주의 재단(Gaza Humanitarian Foundation)의 배급 센터는 ‘살상 구역’이 되었다.
* 생존 위한 밀가루 자루 대신 죽은 친척 어깨에 메고
이스라엘군은 매일 새벽부터 줄을 서 있던 수천 명의 절박한 사람들을 향해 발포하여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매일 굶주린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밀가루 자루 대신 죽은 친척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장면, 기아, 집단학살은 또 다른 이스라엘의 ‘혼돈 전쟁’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이제 네타냐후는 자신의 대량 학살을 계속할 시간을 벌고, 미국이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전쟁에 참전하게 함으로써 또 다른 ‘성취’를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로 끝날 것이라는 게 ‘자말 칸지’가 내다보는 내일이다.
이 모든 일은 외국 전쟁에 대한 미국 국민의 저항이 커지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벨트웨이(Beltway : 워싱턴 주위의 순환도로) 외곽에서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대다수의 미국인은 이스라엘을 위한 또 다른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 여론과 AIPAC가 통제하는 엘리트 의사 결정권 사이의 간극은 계속 벌어지고 있으며, 불평등과 당파성으로 이미 약화된 제도에 대한 신뢰는 더욱 약화되고 있다.
* 이란의 핵 개발 의욕 상승과 새로운 동맹
자말 칸지는 “미국의 이란 공격은 테헤란 지도자들이 기존 세계 질서에 도전하기 위한 세계 질서 재편을 추진하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란에 기반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는 새로운 동맹이 형성될 수 있으며, 이는 향후 수십 년간 지정학적 지형을 재편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의 전체 규모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워싱턴이나 텔아비브도 이란의 핵 기술을 무력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이란은 ‘핵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검토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 국제 사회의 무관심 혹은 이스라엘 지지
한편, 국제 사회는 눈에 띄게 침묵을 지켰다. 이스라엘의 핵시설 공격을 금지하는 국제법 위반을 규탄하기는커녕, ‘이란은 절대 핵무기를 획득해서는 안 된다’(Iran must never obtain a bomb)는 구호만 반복한다. 이러한 수사적 왜곡은 이스라엘과 달리 이란의 민간 핵 프로그램이 샤 왕조(the Shah) 시절부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완전한 감독을 받아왔다는 중요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란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IAEA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이란이 IAEA의 틀 안에 머물려는 유인을 약화시켜, 테헤란이 국제 감시 의무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란의 다음 행보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테헤란이 핵시설 파괴 이후 더 이상 협상할 것이 없다고 미국에 말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미국의 전쟁 개입의 국제법 위반과 이란의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입장에서의 핵무기 개발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은 커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구세주’(savior)로 기억되기보다는 이란이 세계적 검사 체제(IAEA의 사찰)의 손이 닿지 않는 비밀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도록 이끈 촉매제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심판이 오면 역사가들은 네타냐후의 전화 통화부터 트럼프의 속기 쉬운 자존심을 자극한 AIPAC의 자금 지원까지, 지구상 최강국이 어떻게 군사력과 외교 정책을 외부에 위탁했는지를 보여주는 궤적을 따라갈 것이다.
그들은 희생된 인명과 낭비된 선의를 집계하며, 미국이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혼돈 정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면 이야기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st)만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해야 한다는 허세 좋은 트럼프가 네타냐후의 전쟁 하도급 업자 노릇을 언제까지 할지 글로벌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