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계엄령은 ‘사적(私的)인 정치적 난관 극복용’

- 초여름 ‘충암파(沖岩派)’ 회식으로부터 싹이 튼 ‘계엄령’ - 계엄령 결행 2일 전, 김용현 장관이 지령 내려 - 대통령에개 흔히 있는 ‘격노한 상태’로 계엄령 선포 -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 사전 통보 없었고.... 북한 문제로만 알고 있었다고...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입은 계엄령 선포 4분 후 도착 - 계엄령 선포의 목적은 무엇 ?

2024-12-14     김상욱 대기자

지난 123일 밤 윤석열(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선언한 비상계엄령으로 한국이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의 수준 높은 민주주의 의식,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재빨리 뭉친 힘으로 2시간여 만에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처리함으로써 21세기 세계적 참극을 피할 수 있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4일 윤석열(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부터 약 1주일 간의 흐름을 정리해 보도, 그 골자들을 소개한다.

* 초여름 충암파(沖岩派)’ 회식으로부터 싹이 튼 계엄령

2024년 초여름 한국의 윤석열(대통령)은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그 후 국방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저녁 모임을 가졌다. 3명 모두는 서울에 있는 충암고등학교 출신들로, 윤석열은 이른바 충암파라 불리는 동창, 동료들에게 특별히 강한 신뢰감을 보였다.

국내 정세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윤석열은 계엄령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고 한다. 그것도 강한 어투로 계엄령을 입에 올렸다는 것이다.

내전(6.25 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친 한국에서 계엄령은 16차례 선포되었지만, 19876월 민주화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은 20223월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기 전부터 윤석열 캠프에 귀를 기울였다. 2024410일 한국의 총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어, 윤석열 정권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자, 윤석열이 계엄령을 입 밖으로 내는 횟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 계엄령 결행 2일 전, 김용현 장관이 지령 내려

윤석열은 지난 812일 김용현을 국방장관으로 낙점했다. 이후 계엄령이 본격적으로 검토됐다. 정보를 접한 야당은 국회에서 집요하게 계엄령 선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소문은 진짜인가?”라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충암파는 그럴리가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현실로 나타났다.

결행 2일 전. 국회에 3일 밤 돌격하는 부대를 지휘했다.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에게 김용현 국방상으로부터 지령이 내렸다. “국회, 중앙선관위 관련 3, 민주당 본부, 여론조사회사 꽃 등 6곳을 장악한다

계엄령 선포 3시간 전인 3일 오후 730분쯤, 윤석열은 김용현 국방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 경찰청장 3명을 불렀다.

윤석열이 제시한 A4 사이즈의 종이에는 계엄령 선포 후 구속해야 할 인물의 이름과 장악해야 할 대상으로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울 시내 여론조사회사 꽃, 윤 정권에 한층 엄격하다 보도 자세를 취하는 MBC TV 10곳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3일 오후 출장을 갔던 남동부 울산에서 급거 서울로 돌아왔다.

* 대통령에개 흔히 있는 격노한 상태로 계엄령 선포

3일 오후 840분쯤 윤석열(대통령)은 한덕수(총리)를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불러 들였다. 계엄령을 선포한다고 전했다. 한덕수는 함께 설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3일 밤 1017, 국무회의가 시작됐다. 접견실이었다. 대통령은 첫머리에서 누구에게도 논의하지 않았다면서 계엄령 선포를 하겠다고 했다. “국무위원 전원이 반대했다는 게 한덕수의 전언이다. 국무회의는 5분 만에 끝났다. 계엄령은 선포됐다.

*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 사전 통보 없었고.... 북한 문제로만 알고 있었다고...

3일 밤 1148분쯤 계엄군 약 280명이 국회에 헬리콥터로 투입됐다. 1진을 태운 헬기 3대가 국회 뒤편 운동장에 차례로 착륙했다. 푸드득 푸드득거리며 헬기의 선회 음을 내며 도착한 특임대 계엄군은 이른바 윤석열 정권에 비판해 왔던 슈프레히콜(Sprechchor : ()윤석열 세력 집단의 목소리)을 잠재우는 데 실패했다.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은 대원들에게 안전을 위해 총기는 둔 채 임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조지호 경찰청장에게는 윤석열로부터 6회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한국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국정원)의 홍장원 제1차장도 윤석열로부터 이 기회에 모두 잡아 정리하라고 했다고 국회 정보위원장에게 설명했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정치인 체포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절대 없었다고 단언했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불분명하지만, ‘지시는 현장 판단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곽 육군 특전사령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로 빨리 문을 부수고 안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라고 지시받았다고 말했다. 김용현 국방장관으로부터도 같은 지시를 받았지만 따르지 않았다.

육군참모총장은 곽 사령관으로부터 스턴 건(stun gun : 전기충격기)의 일종인 테이저(taser)나 공포탄을 사용하도록 요청받았지만, 현장 대원에게는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육군 정예부대 ‘707 특수임무단김현태 단장은 후에 국회 건물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증언했다. 그는 헬리콥터에서 내려서 처음으로 의사당의 크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입은 계엄령 선포 4분 후 도착

계엄군이 향한 또 다른 대상이 선관위였다. 경기도 과천의 중앙선관위에는 계엄령 선포로부터 약 4분 후에 진입했다고 한다.

서울시의 다른 선관위 청사와 인근 수원시 연수시설에도 계엄군이 진입했는데, 병사 수도 297명으로 국회보다 많았다.

중앙선관위에 진입한 방첩사령부 수사단장은 계엄령 선포 약 5시간 반 전인 3일 오후 5시경 김용현 국방장관으로부터 오후 9시 과천 청사 부근에서 대기하라는 지시와, “중앙선관위로 이동, 전산실의 위치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방범 카메라의 영상에서는, 과천시의 청사 2층에 있는 전산실에 들어간 계엄군들이, 사전 투표자의 명부를 관리하는 서버의 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이 확인됐다.

대통령이 야당에 의한 부정선거를 의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0.73%의 득표율 차이로 승리한 2022년 대선에 대해 윤석열은 실제로는 더 이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침체하고 있는 지지율도 야당이 조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주위에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주목받는 것은 기존 미디어를 능가하는 인기를 자랑하는 넷미디어(유튜브 등)와의 관계이다. 윤석열은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부정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보수계 유튜브 방송을 애호하고 있다는 보도이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계엄군이 압수한 것은 당직 근무 직원들의 휴대전화 5대뿐이었다고 한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선관위 서버는 인트라넷(내부 통신망 : 외부와 연결 없는 폐쇄망)과 외부와 연결되는 인터넷망으로 구분되어 있어, 인트라넷은 접속 자체가 안되어 해킹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 계엄령 선포의 목적은 무엇 ?

윤석열 대통령이 궁극의 카드를 내보내는 것(계엄령 선포)국정이 막힌 것에 대한 '절박감에서 선포했으며, 국민들이 그것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반대 세력을 이른바 반()국가세력(anti-state forces)에 대한 척결을 위한 결단이었다는 설명이다. 전적으로 사적인 감정에 의한 계엄령임을 자인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