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한강을 거리에 세우다!
폭력에 대해 치열한 영혼을 가진 작가라면 말해야 한다 러시아와 하마스의 폭력성에 대해 북한 김정은의 폭력성에 대해
나는 작가 한강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오래 전 누군가 읽다가 신문사 회의 테이블 위에 둔 그의 '채식주의자'를 잠시 넘겨보다가 느꼈던 유쾌하지 않은 느낌을 기억할 뿐이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 두 인물이 떠올랐다. 가와바타는 문학가이며 김대중은 정치인으로서 노벨상을 탔다. 한강은 그 두 사람 사이의 아주 먼 간격 어느 중간 지점에 선 인물일까.
가와바타는 명작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탔고, 김대중은 대북 평화정책으로 노벨평화상을 탔다. 내가 아는 한강은 가와바타보다 김대중에 가까운 이유로 노벨상을 안게 된 게 아닐까 하는 개운하지 않은 직감을 한다. 작가 한강은 이런 나의 직감을 불쾌하게 느끼지 않길 바란다. 그 이유를 이 글에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한 사람의 작가일 때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가 쓰는 작품은 영혼의 산물이며, 그리 대단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노벨문학상이 그를 대단한 사회적 인물로 거리에 내세웠다. 지금 서점엔 한강의 책이 동났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 전체가 열광하고, 또 한 켠에서는 수많은 작가, 유튜버를 비롯한 언론인들이 그의 정신세계와 이념 편향성에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것이다. 작가로서 그가 가진 책임은 며칠 전과 달리 수천 배 커진 걸 그 자신 역시 느낄 것이다.
그가 노벨상 수상에 대한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는 아주 감동적이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육의 아픔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에게 폭력은 노벨상 수상자로서 국민의 알권리를 덮어버릴 만큼 중요한 증오의 대상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다. 그토록 폭력에 대해 치열한 영혼을 가진 작가라면 그는 러시아와 하마스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입을 떼야 한다. 그리고 네타냐후의 폭력적 질주와 이란의 미사일에 대해서도 그는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의 폭력성과 독재에 대해 분노했던 그가 누구보다 짙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작가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 김정은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한강은 말해야 한다. 고모부를 총살하고, 형을 암살했으며, 수많은 인민을 죽인 김정은에 대해 그는 아직 말하지 않고 있다. 그에게 푸틴과 네타냐후는 김정은보다 더 현실적으로 가까운 가해자인가? 아니다. 열 배 가까운 폭력과 인권 말살이 우리 담장 너머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한강은 그것에 대해 왜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기다려줄 수 있다. 자연인 작가 한강으로부터 사회적 영향력의 책임을 느껴야 하는 영역에 갓 들어온 작가 한강의 ‘말’을 기다려줄 수 있다. 폭력에 대해 선택적이지 않고, 폭력 피해자들에 대해 진정성 어린 그의 말을 기다린다.
자, 이제 말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