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에게 바란다] 지만원 박사님을 구하라
우리는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주저 없이 헐리우드의 명작으로 분류한다. 명감독 스필버그의 작품이기 전에 2차대전의 전기인 노르망디상륙작전을 리얼하게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많은 자식들을 전선에 내보내고 차례로 전사통보를 받게 된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 즉 막내 라이언을 구해 달라는 소망을 전쟁을 지휘하는 최고사령부가 내린 특임소대의 특파결정에 감응하는 것이다. 당사자 라이언 일병은 최전선 보병대 소속으로 사령부의 명령인 부대이탈(귀환)을 완강히 거부하다가 소대장을 비롯한 특임소대의 희생을 목격하고 어머니의 품안으로 돌아온다는 설정이 감성을 자극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하게 된다. 이것은 당사자가 특별한 능력이나 지위가 있기 보다 당사자의 희생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쟁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대원칙에도 불구하고 때로 모성애와 같은 휴머니즘에 자리를 양보할때 우리는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이다.
말머리에 '라이언일병구하기'를 꺼낸 것은 이와 비견되는 '지만원대령구하기'를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만원 박사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육사 출신이자 월남전 참전용사이고 미 해군대학 교수를 역임한 인물이다. 또한 '시스템요법'이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국방연구원 출신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광주사태(5.18) 관련 연구와 발표로 광주단체로 부터 지난 20년 간 150여 회에 이르는 소송으로 종래에는 80의 노령에도 옥중에 있다.
한국 민주화의 특징 중 하나는 사법제도를 활용한 통제, 즉 법전(lawfare)이자 사법적폐임을 숨길 수 없다. 법전에는 역사적 사실과 참전용사를 가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가히 고대 그리스(아테네) 소크라테스 시대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테네는 민주주의 원조국이었고 페리클레스의 지도력에 의해 찬란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점차 지도력이 사라지자 중우정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당대의 지성 소크라테스의 비판이 이어지자 급기야 아테네는 소송과 판결로서 소크라테스를 압박한다. 소크라테스의 저항은 관례(해외망명)를 어기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악업인 중우정(대중폭정)의 위험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지만원 박사의 경우 무도한 5.18 단체들에 의해 집중적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것의 배경에는 광주사태가 지난 40년 간 반정부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되고 종래에는 5.18을 폄하하는 어떠한 발언이나 주장도 법으로 금지하는 해괴한 사태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사법계는 많은 좌익계(주사파, 호남인맥)가 장악하여 상식이 통하지 않는 치외법권의 영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5.18은 기울어진 법전(lawfare)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이다.
5.18과 관련된 사법시스템으로 적을 죽이는 법전의 대표적 사례를 보면,
부당한 재판관할권 무시(전두환, 지만원), 부당한 구속의 남발과 연장, 불리한 증거불채택, 유리한 증거조작, 재판기간 무시와 묵살(부정선거), 과다한 손해배상(지만원 손해배상, 전두환 손해배상, 탁훈탁 손해배상, 이도형 손해배상 외), 재갈물리기 입법(언론중재법), 입법에 의한 접근차단(역사왜곡방지법, 5.18민주화조치법), 입법에 의한 비상식적 보호(4.3 보상법), 묵살에 의한 재판거부(4.15 선거재판), 위헌소송 합헌결정, 주민자치법 입법을 통한 사회주의도입, 집시법을 활용한 광화문 집시방해 등이다.
법전(lawfare)은 법의 냉소적 조작, 또는 법적 사보타지라는 수식어가 있듯이 사법을 정치화학 정치를 사법화하며, 종국에는 사법시스템을 붕괴시킨다. 원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법을 통치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도구로 보기 때문에 민주적 법질서, 즉 도덕, 관습, 법으로 대표되는 사회규범이 아니라 공권력의 해체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법전을 뛰어넘는 지만원 박사의 지성과 불굴의 용기이다. 그는 좌익들의 법전에 맞서 수많은 연구로 오히려 5.18의 반역성을 규명하는 작업을 지속하여 참전용사의 의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구와 발표로 인해 발생한 전례없는 법전은 '드레퓌스 사건' 같은 세계적 사례가 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은 자율과 규율, 권리와 책임, 교양과 재산와 같은 전혀 상이한 요소가 창조적으로 결합된 자유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지킬 지성과 용기가 있느냐이다.
이제 지만원 박사의 이야기는 개인사가 아니다. 이미 한국은 좌익들의 법전이 만연한 사법적폐가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으며, 자유국가의 기본인 참전용사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불법국가인 것이다. 무엇보다 성고문사건은 언론에 의해 알려졌고, 박종철 사건은 정국의 향방을 바꾸었다. 그러나 참전용사의 치명적 위험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지만원 박사의 이야기는 윤석열 정부의 국가정상화의 바로미터이다. 역대 정부는 이현령 비현령으로 좌파들에 의한 법전에 대한 인식도 정의회복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필요조치도 타산지석에 불과했다. 한국의 민주화에 내재된 본질적 적폐를 깨닫지 못했기에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가 끝나고 영어의 몸이 되거나 혹은 임기 중 탄핵을 당하고 오랜기간 구금되었던 것이다. 대개 무능한 정부는 국정을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검찰총장 출신이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정부는 종북법전이란 사법적폐에 대한 기본 인식이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