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국제법(有名無實 國際法)

- 국제법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 졌을까? - 미국 주도의 국제기구와 미국 위법 행위 - 국제 사회의 무관심 - 전쟁을 규제하는 국제법 없어 - 전쟁의 참상 보도 통제, ‘사망자 수는 세지 않는다’ - 무관심과 무시, 그리고 블록화 - 국제법 강화

2024-09-07     김상욱 대기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가자 전쟁, 전쟁 과정에서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파리 목숨처럼 공격에 의해 사라지고 있다. 국제 사회에는 여러 국제법과 기관들이 존재하지만 갈수록 국제법의 역할은 희미해지면서 소멸 과정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세계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 즉 주권 국가의 우선권을 내세운다. 자신의 주권과 국가 이익을 국제법보다 우선시한다. 특히 국제법이 자국의 이익과 상충할 때 아예 국제법을 무시하거나 해석을 자국에 유리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국제적 협력 의지가 부족해지고 있다. 국제법의 효과성은 국제 사회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가 간의 갈등이나 협력이 부족하면 국제법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애 없다.

또한 국제법은 법적 구속력이 부족하다. 국제법은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조약이나 협약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법들은 당연히 강제력이 약하고 위반에 대한 처벌이 미비할 수밖에 없다.

국제기구의 한계점이 존재하는 것도 국제법의 효과성이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국제법을 집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기구들은 자주 정치적 갈등이나 자원의 부족 등으로 효과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나아가 비국가 행위자가 증가하는 것도 국제법을 위협한다. 국제 사회에서 비국가 행위자(예, 다국적 기업, NGO, 테러 조직 등)의 역할이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국가 중심의 국제법 체계가 그에 맞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때가 있다.

국제법의 해석과 적용의 일관성 부족도 요인이다. 국제법의 해석과 적용은 주관적일 수 있으며,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국제법의 적용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 그렇다면 국제법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 졌을까?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는 다시는 그런 공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 기구와 국제법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국제기구의 중심은 유엔과 그 지역 및 기능 기관이었으며, 무력 사용을 제한하기 위한 국제적 보호 장치를 제공하도록 설계됐다. 1947년 국가 안보법은 미국 행정부가 국제 사회를 관리하고, 심지어 변화시키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설계됐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열린 44개국이 참가한 유엔 통화 금융 회의에서 탄생된 ‘브레튼우즈’ 체제를 포함한 경제적 요소도 있었는데, 여기에는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에서 국제개발을 자극하기 위한 세계은행이 포함됐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은 국제 무역을 관리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불 균형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 관리들은 이 모든 기관의 중심에 있었으며, 워싱턴을 다자주의 세계의 중심에 두었다. ‘고립주의’와 ‘극단적인 국가주의’에 대한 현재의 세계적 추세는 이러한 기관을 위협하고 있다.

* 미국 주도의 국제기구와 미국 위법 행위

이후 국제 활동의 증가로 미 백악관 직원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행정부의 수십 명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 현재 수천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관료적 성장은 경제 자문 위원회(Council of Economic Advisers, 1946), 국가 안보 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 1947), 특별 무역 대표( Special Trade Representative, 1963), 관리 및 예산 사무국(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1970), 백악관 과학기술 정책 사무국(White House 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1976)으로 특징지어졌다.

미 대법원은 국가 안보 분야에서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예외적인 존중을 보여주었고, 미국 의회는 유엔, 마셜 플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그리고 다양한 다른 국제기구와 안보 협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의심 없이 대체로 수용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는 직접적인 주역의 경계를 뛰어넘어 더 큰 폭력을 가리키는 혼란의 엔진이 너무 많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2년 반 전쟁은 중부 및 동부 유럽을 더 큰 갈등에 휩쓸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지만, 그것은 ICC 회원국으로의 그의 여행을 제한하지 못했고, 전쟁을 벌이는 그의 테러 전략을 개선하지도 못했다. 힘이 쑥 빠진 국제법의 위상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중동 전쟁 1년은 미국과 이란이라는 두 주요 비(非)아랍 세력이 개입할 수 있는 더 큰 지역 갈등을 위협하고 있다. 다시 한 번 ICC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에 대한 체포 영장을 고려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집단 학살(genocide)’ 작전이나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강제 이주시키는 일은 전혀 중단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미국에서 공급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확실히 국제법을 위반하며 무시한 것이며, 네타냐후의 전쟁에 미국이 공모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영국만이 이스라엘에 대한 특정 일부 무기 공급을 제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 국제 사회의 무관심

서방은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인 수단의 세계적 재앙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수단에서는 수백만 명이 피난민이 되고, 수만 명이 학살당했으며, 1980년대에 에티오피아를 휩쓴 기근에 버금가는 기근이 곧 닥칠지도 모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가자 전쟁처럼 수단 내전은 국경 너머까지 혼란을 일으킬 엔진이 될 것이다. 수단과 국경을 접한 나라들은 이미 취약한데, 특히 차드, 이집트, 에티오피아, 리비아가 그렇다. 이 지역 전역에서 무기 밀수가 이루어지고 있고, 수단은 리비아처럼 두 개의 지리적 지역으로 분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수단군(SAF)이나 신속지원군(RSF)에 물자를 공급하는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이란과 같은 외부 참여자들로 인한 추가적인 위험이 있다. ICC는 현재 SAF와 RSF가 저지른 범죄와 잔혹 행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있지만, 큰 성과 기대는 높지 않아 보인다.

* 전쟁을 규제하는 국제법 없어

1928년 8월에 체결된 전쟁이 아닌 평화적 수단을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채택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을 제외하면, 전쟁을 규제하는 국제법은 없다. 대량 학살과 고문은 다양한 의정서에 의해 금지되어 있지만, 이는 푸틴, 네타냐후 또는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세계적 전쟁을 치르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는 어느 도시도 전략적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테러 행위였다.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잔혹 행위는 군사 및 민간인 대상을 구분할 필요성에 대한 심각한 토론으로 이어졌어야 했지만, 인도적인 전쟁 규칙에 동의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국제적 논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는 수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수단에서는 15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 전쟁의 참상 보도 통제, ‘사망자 수는 세지 않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 미국이 벌인 전쟁은 수많은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 미 국방부는 전쟁의 인적 비용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억제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방부는 미국 언론인에게 군부대에 언론인들을 파견하도록 요청, 파견된 언론인을 끌어들여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를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해 사전 출판 검토를 위해 군에 기사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기자들의 영상을 지웠다. 그리고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통계를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다. 토미 프랭크스 장군은 “우리는 사망자 수를 세지 않는다”고 말했다.

* 무관심과 무시, 그리고 블록화

미국은 현재 존재하는 국제적 공포를 완화할 수 있는 잠재적 적대국과의 양자 대화 가능성에 충분한 주의와 자원을 쏟지 않고 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는 미국과의 핵 협상에 ‘장벽이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중국은 미국이 양자 관계를 안정시키고 핵 문제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기 위해 베이징에 대한 압력을 완화하기를 원한다.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여행을 피하는 미국 대통령이 됐다. 푸틴은 미국과 대화를 재개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바이든은 러시아 대통령에게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를 제외하고 오바마, 바이든은 핵과 탄도 미사일 개발 등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애매한 용어를 들먹이며, 마치 정교한 외교 정책이라도 되는 양 사실상 대북정책은 방치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항하는 아시아에서 동맹 체계를 구축하고, 러시아에 대항하는 유럽에서 동맹을 재건하고, 중동과 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 한국, 필리핀’과 인상적인 파트너십이 형성됐고, NATO는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지리적 한계까지 확대되었으며,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아랍 국가들이 이란을 고립시키도록 장려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 국제법 강화

국제정책센터의 수석 연구원이자 존스 홉킨스 대학 정부학 교수인 멜빈 굿맨(Melvin A. Goodman)은 아마도 바이든의 레임덕 대통령직은 국제적 위험 수준을 낮추고 보다 안정적인 관계의 정치적 지표를 관리하기 위해 국제적 월계수에 의존하고 세 가지 주요 적대국(러시아, 중국, 이란)을 끌어들일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그는 이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데는 제재가 효과가 없었지만, 외교적 유인책이 주어져야 한다”면서 “준동맹(quasi-alliances)의 형성은 국제 사회에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more harm than good)”이라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