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에게 바란다] 예수님에게 배우라
타락한 카톨릭에 청빈과 노동정신으로 저항했던 프로테스탄트의 진정한 저항정신이 한국에 부활되어야 한다. 진리가 곧 자유이기에 자유를 위한 영성과 지성을 결합하는 운동도 일어나야 한다.
독일의 역사(영문)문화학자 디트리히 슈바니츠(Dietrich Schwanitz)는 세계사를 바꾼 자살을 소크라테스와 예수님을 들었다. 이것은 세계사를 바꾼 죽음으로 알렉산더와 카이사르의 죽음과 비견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후자는 전염병과 암살(3.15)이라는 극적인 것이었다면, 전자는 의도적인 자살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이 70이 되어서야 연단에 선 늦깎이의 전형이었다. 그는 아테네 출신이었으나 외모도 볼품이 없었고 수입도 많지 않아 마누라를 악녀로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청년들을 오염시킨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자 가족 뿐 아니라 주위는 모두 관행처럼 해외망명으로 탈출하기를 권고했다. 당시 아테네는 참주를 포함하여 시민까지 기소되는 자는 해외망명을 막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란 말로 죽음을 자초한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제자 플라톤의 책에서 기술되어 있다.
슈바니츠는 바리새인들에게 기소되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된 예수님도 소크라테스처럼 자살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에 예수님이 사도 중 배신자의 존재를 언급했고 최후의 만찬을 베푸는 등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기도 하지만 물위를 걷는 등 스스로가 전지전능한 독생자의 언행과도 연결된다. 슈바니츠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아들이란 모순"을 적시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사후 제자들에 의해 그들의 뜻이 전해진 것도 거의 동일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저작을 남기진 않았으나 그의 제자이자 인류 최고의 철학자인 플라톤의 저술 뿐 아니라 그가 설립한 아카데미아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로 철학의 비조가 되었다. 예수님은 비록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했으나 그가 생전 그렇게나 찾고 가르쳤던, 심지어 환생까지 하면서, 12사도들의 기록과 순교에 의해 로마의 국교로 나아가 세계의 종교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첫째, 비전이다. 그는 기존의 성경(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가 자신임을 일관하게 주장하고 그의 말이 곧 새로운 약속이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관했다. 그는 자신이 인간이 천국으로 가는 게이트 키퍼임을 알렸고, 이것은 유대사회의 배척으로 종내 죽음으로 안내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예수님의 비전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독생자이나 구유에서 태어났고 빈자와 환자의 친구이자 치료자로 나타난다. 결국 종교는 권력과 부가 아닌 명예(헌신)의 최고 영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것은 왕자로서 왕궁을 나와 처절한 깨달음으로 마침내 해탈한 부처님과 유사한 방식이다.
둘째, 카리스마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선지자들이 등장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을 보여준다. 모세는 애굽에서 해방과 귀환으로 이끌었고, 다윗은 무서운 적에 맞서 나라를 구했고,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맹주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젊은 나이로 메시아를 자처한 것이다. 요한을 세례자로 만들고 바리새인들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그의 카리스마를 두려워한 제사장들은 총독에게 국정혼란을 경고하며 최고형을 요구하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총독(빌라도)은 직접 심문하여 위법사실이 없고 "하늘나라의 주인"이란 말에 다신교 나라 로마의 법질서에 따라 몇차례 구명에 나섰으나 결국 유태인들의 요구에 굴복하게 된다.
셋째, 혁신의 아이콘이다. 기록에 따르면 예수의 젊은 시절은 가려져 있다. 당시 종교시설이나 학습도 찾아볼 수 없다. 후일 링컨 대통령에 뒤이어 대통령이 된 앤드류 존슨은 선거 당시 "무학으로 자격이 없다"는 군중들 앞에 "예수님도 학력이 있지 않았으나 누구나 존경하지 않느냐"는 답변으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신약을 중심한 예수님의 혁신은 역사상 위대한 혁신자연구로 유명한 버트 호셀리츠(Bert F. Hoselitz)교수의 결론과도 일맥상통하다. 그는 혁신자는 결코 엘리트 뿐 아니라 '사회일탈자(social deviant)'나 '주변집단(marginal group)'에서 충원되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정신과의사로 미국의 위인들은 정상인과 정신병자 중간의 하이퍼매니아임을 밝힌 존 가트너의 연구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넷째, 위대한 팀 빌더였다. 예수님의 대장정은 불과 3년에 그쳤으나 그는 개인이 아닌 팀을 통해 자신의 역정을 수행했다. 그는 자신도 빈한하였기에 상류층이 아닌 하류층을 제자로 삼았다. 그들은 어려운 가운데 성장하였기에 돈키호테식 도전역정에 기꺼이 동참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등 헌신으로 제자를 삼았고 개인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진정한 힘은 이 속에서 싹튼 유대감으로 팀을 만든 것이다. 그의 사후 제자들은 초기의 혼선을 극복하고 유럽으로 흩어져 포교와 순교하며 스승(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다섯째, 죽음을 통한 진정성(헌신)이다. 예수님의 새로운 비전은 영생과 심판이다. 이것은 육신의 죽음의 끝은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이며 바로 자신이 주인인 세계였다. 공자와 같은 3차원적 세계가 아니라 4차원(영성)의 세계를 제시한 것이다.
이후 예수님의 세계와 그에 대한 설계는 수많은 신학자, 예술가(화가)에 이르는 설명(해석)이 잇따랐다. 대표적인 것이 단테의 신곡이다. 그가 제시한 하나님의 나라는 크게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지고 중간계로 연옥이 있다. 연옥은 천국으로 가는 기나긴 과정이며, 지옥은 엄격히 차단된 무간지옥으로 9계단으로 이루어지고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은 악마 루시퍼가 배신자 유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머리를 갉아먹는 공간이다.
전후 한국의 건국과 산업화는 20세기의 기적이다. 그리고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과 기독교의 연결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의 승계였다. 일찌기 막스 베버(Max Weber)는 자본주의의 성공을 청교도 정신으로 통찰했으며, 한국의 기적도 이러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제 한국의 영성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청교도정신과 함께 한국의 미래를 결합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의 기독교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있다. 독서, 교양이 절연된 신세대들은 종교적 가치에 몰각하는 한편으로, 문산당(문재인+공산당)의 종교침투와 해체 시도, 나아가 동성애법 등 입법으로 영혼과 제도를 파괴당하는 지경인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기독교를 파괴했던 악마는 초거대 의석(민주당)으로 여전히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타락한 카톨릭에 청빈과 노동정신으로 저항했던 프로테스탄트의 진정한 저항정신이 한국에 부활되어야 한다. 진리가 곧 자유이기에 자유를 위한 영성과 지성을 결합하는 운동도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