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산성 ,반세기 동안 이어 온 뚝심의 파노라마

2019-07-26     김종선 기자

한계산성이 국가지정문화재에 지정 예고되기까지는 강원도 지정문화재 지정 이후 50년, 지난 86년 강원대학교 중앙박물관에 의뢰해 지표조사 보고서가 발간되고 30여년,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신청 후 3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빛을 보게 됐다.

한계산성은 마의태자 전설이 구비전승 되고 고려 삼별초의 대몽항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사현장으로 인제지역에서는 전해 내려오던 역사 유적지이다. 처음으로 유적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게 된 것은 지난 1973년 7월 강원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이다.

그 후 13년이 지난 1986년 강원대학교 중앙박물관에 지표조사를 의뢰한 가운데 그해 12월에 보고서를 발간한 후 지난 86년 7월부터 96년 12월까지 10년 동안 5차례에 거쳐 남문지 일원 보수공사를 마쳤다.

한계산성에 대한 보수공사가 진행된 것은 12년이 지난 2008년이다. 2006년 7월 중부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수마가 할퀸 상흔으로 남아 있는 남측과 서측 성곽을 정비했다.

한계산성은 보수공사는 남문지, 서측․동측 성곽, 남측 성곽 등에 대해 32년 동안 여섯 차례가 진행됐다.

인제군은 한계산성의 보다 광범위한 보존과 가치 정립을 위해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부터이다. 기초현황조사 및 안전성 검토 용역을 추진한 후 2012년 5월 역사 문화적 가치와 정비활용방안이라는 주제로 1차 학술대회를 마련했다.

학술대회를 통해 한계산성은 5~6차 몽고침입 시기 성곽의 변화와 여말선초 공민왕의 반원정책과 동해안 이래 왜구 침략을 대비한 축성 자료를 비교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 및 고고학적 자료로서 가치를 입증 받았다.

이어 인제군은 같은 해 6월 강원도의 지원으로 종합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2년 뒤인 지난 2014년 12월에 1차 하성(下城) 발굴조사 용역에 착수해 다음해 2월 역사적 성격과 조사․보존방안을 주제로 2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차 학술대회에서 조사결과 5개 지점에서 모두 18개 건물지에서 수혈(땅을 파내려간 구멍), 석렬(나란하게 세워진 돌), 구들, 박석 등 모두 93개의 유물이 확인됐다. 특히 명문기와편에는 至正十八年(지정 18년: 고려 공민왕 7년), 물고기 뼈 무늬, 집선문 등 문양이 그려긴 기와 파편과 조선시대 백자 조각 등이 여러 곳에 각각 발굴 보고 됐다.

또한 같은 해인 2015년 12월 강원도 지원으로 2차 상성(上城) 발굴조사 용역을 실시해 이듬해인 2016년 3월 한계산성의 가치와 활용방안이라는 주제로 제3차 학술대회를 가졌다.

이 대회를 통해 3곳에 분포된 발굴지에서 구들 건물지 15곳, 석축 3곳, 수혈 2곳, 우물지 1곳, 선성관련 시설 3곳, 미상유구 2곳 등 모두 28곳의 유구를 확인했다. 특히 중국 송나라 소성원보(紹聖元寶)와 서하국 천성원보(天聖元寶), 상성 활용시기와 관련된 12세기 후 13세기 초 상감청자 국화무늬 합이 발견 보고 됐다.

이에 따라 인제군은 지난 2016년 9월에 강원도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 사전 심의를 받아 같은 해 11월 강원도가 문화재청에 국가지정 사적 신청한 가운데 3년이 지난 1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마련된 심의에서 가결을 받았다.

이번 사적지정 실무를 맡아 추진했던 윤형준 인제군 문화유산 담당은 “고려무신집권기 몽고의 침입과 입보산성(入保山城)이라는 역사적 특징, 그리고 설악산에 위치한 경관성, 구비 전승물 등을 토대로 문화재 활용 가치가 높다”고 밝히고 “한계산성의 보존과 가치 정립과 교육적 기능을 높여 인제군의 또 하나의 역사문화 코드로 발전시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