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지방선거 후보자의 화려한 포장지에 속지 말자

2018-03-27     이강문 대기자

‘낮에 본 여자와 밤에 본 여자가 다르다.’란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전에 속한 말이다. 요즘은 며칠 전에 만났던 사람을 전혀 딴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성형 의술이 놀랍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뜯어 고친다는 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다만 겉만 고칠 게 아니라 속마음도 고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포장지가 화려하다고 내용물까지 화려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요단강 계곡 경사면에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들은 저마다 소원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 나무는 에루살렘으로 가서 세공을 받아 하나님의 성전에 재목이 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경배하는 하나님의 성전에 한 부분이 되어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고 싶었다. 두 번째 나무는 바다로 가고 싶었다. 범선이 되어 사람의 왕래를 도울 뿐이 아니라, 온 세계로 두루 다니면서 환상적인 생을 살고 싶었다. 

세 번째 나무는 그냥 그 자리에 남고 싶었다. 아주 높이 자라서 하늘을 향해 가지를 치켜들고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그 그늘에 앉아 쉬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세월이 지나 그 세 그루의 나무들은 잘려 나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의 기둥이 싶다던 첫 번째 나무는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 그 나무는 작은 구유가 되었다.

나귀가 핥아먹고 소들이 핥아먹는 먹이통이 되어 마구간 한 귀퉁이에 팽개쳐지는 슬픈 신세가 되었다. 두 번째 나무는 큰 배가되어 바다로 나가고 싶었는데, 서글프게 찍히고 깎이어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어 갈릴리 호수로 가게 되어 비린내 나는 생선을 싣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일이 없을 때는 호숫가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 번째 나무는 그 자리에 남고 싶어 했는데, 소원과는 달리 엉뚱하게도 저주받은 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십자가가 되었다. 모두 비참한 운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 그루의 나무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위대한 일을 하기 바랐는데 초라한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나무들은 자신들의 모습에 견딜 수 없는 비참함을 느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유대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태어났다. 그 분은 태어날 곳이 마땅찮아 마구간에 들어가 말구유에서 태어났는데, 그 말구유가 첫 번째 나무였다. 결국 예수가 태어난 첫 침대였다. 다시 세월이 흘러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할 갈릴리 호수에 와서 보잘 것 없는 한 조각배에 올라 앉아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때 예수가 올라앉은 그 조각배가 두 번째 나무로 만들어 진 것이다.

세월이 더 흘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 그 나무가 세 번째 나무로 만든 십자가였던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슬픔을 겪는다. 우리가 꿈꾸던 화려한 꿈이 와르르 무너질 때 좌절과 절망에 몸부림친다. 선거에 출마해 떨어져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낙심하지 마라. 분명히 내가 할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형수술로 화려한 포장은 하지 말자.

세상은 모든 이들에게 다 할 일을 맡겨 놓고 있다. 다음 대선에 유망주였던 한 정치인이 가장 치사스런 일로 낙마했고, 그는 거대한 정치적인 포장을 하고 우리를 속였다. 또 연출가로 시인으로 시나리오, 뮤지컬, 예술의 이벤트까지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연희단거리패를 이끌었던 이윤택은 수많은 여자를 농락한 희대의 카사노바였다. 그는 연극계의 왕이었으며 찬란한 가면을 쓰고 우리를 속였다.

이렇게 화려한 가면을 쓴 정치가, 예술가, 화가, 교수들에게 우리는 철저히 속고 있었다. 크게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속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대 의술로 가면을 쓴 한 여인에게 철저히 속았다. 이제 누가 화려한 포장지로 가면을 쓰고 우리 앞에 나타날지 걱정이다. 한 여자 검사가 세상을 뒤집어 가면 벗기기가 미투라는 이름으로 온 나라를 휘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