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패싱] ‘누더기 걸친 신데렐라’ 한국 언론의 민낯

현재 한국 언론은 ‘알 권리의 대변자’ 아닌 그 파괴자요 기만자인 괴물이다

2017-05-01     맹세희 논설위원

신데렐라에게 착한 요정이 준 선물은 자정 12시 종이 울리면 모두 본래 참담한 형상으로 돌아간다. 최근 한국언론의 화장 안 한 민낯을 보았다. ‘12시 자정의 시계 종소리’는 이번 대선의 한 후보토론회였다. 우리 언론의 맨얼굴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민망했다.

고등학생보다 못한 대선후보들의 토론수준은 생경하면서도 이미 익숙한 장면이니 새로울 바 없다. 그들보다 더 딱한 것은 거기 기생해온 한국언론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잠시 그날 토론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물었다. “워낙 영어를 싫어하시니까. 그런데 KAMD(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는 영어로 하시네. 코리아 패싱이라고 아시나요”라고 질문했다. 문 후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코리아 패싱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서 한국을 배제한 채 논의를 진행하는 현상’을 말한다. 

유 후보는 “오늘이 인민군 창건일인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화 통화하지 않았다. 중국 관영통신에는 미국이 핵미사일을 선제타격 한다고 났다”며 현재 북한 문제에서 한반도가 제외된 상황을 설명했다.

유승민 후보는 또 “사드는 그 자체로 중요한게 아니라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며 문 후보는 한미동맹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문재인 후보는 “미국이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나라를 누가 만들었냐”고 발끈했다. 그러자 유 후보는 “무시 차원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오로지 미국 주장을 추종만 하니 미국이 우리하고 협의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는 황당한 말로 면피하려고 했다. 뭐 대선후보들의 무지야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일일이 따질 것은 못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그에 대한 별도의 언급은 지면 관계상 삼가겠다.

그러나 이와 관련 보도를 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는 단순한 문제 수준을 넘어 거의 사회적 재앙 차원이었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이 토론회 후 언론들의 보도는 이런 식이었다. 중앙일보는 <원어민에게 ‘코리아 패싱’ 아냐 물었더니...> 기사에서 원어민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중앙데일리에서 정치 및 사회 뉴스를 담당하는 미국인 에디터 데이비드 볼로츠코는 “콩글리시”라고 답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정확히 말하면 저팽글리시다. 문제는 이게 문법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점”이라면서 “정확한 영어 표현은 뭘까. 좀 길다. Korea has been passed over”라고 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도 자신의 트위터에 “엉터리 영어 실력 자랑한 유승민”이라고 조롱하면서 동아일보의 <논란 된 ‘코리아 패싱’, 알고보니 콩글리시? 외교부 “美도 안 쓰는 용어”> 기사를 링크했다.

그러나 이들 언론사들 자신이 이미 여러 차례 이 용어를 사용하는 기사와 칼럼들을 올린 바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경악케 한다. 그들이 생명처럼 존중한다는 ‘팩트’에 대해 기본적 ‘팩트체킹’조차 하지 않고 기사를 쓴 것이다. 특정후보를 옹호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인지는 불명확하다. 그러나 그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최근 미디어스라는 인터넷매체는 4월 27일자 기사 “‘코리아 패싱’ 안쓰는 콩글리시?”에서 이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외교부는 물론, 14년전인 2003년 프레시안부터 2008년에는 한겨레, 심지어 위에 언급한 기사를 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불과 4월에도 ‘코리아 패싱’이라는 용어를 썼음을 입증하고 있다.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역시 ‘코리아 패싱’이라는 단어가 올라있다. 이 사전은 코리아 패싱을 “직역하면 ‘한국 건너뛰기’라는 뜻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이슈에서 한국이 빠진 채 논의되는 형상을 말한다. 즉,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이 한반도 안보 현안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1998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건너뛰고 곧장 중국만 방문하고 돌아간 상황을 재팬 패싱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언론은 채용할 때 스펙 특히 외국어 능력을 많이 본다. 필자가 아는 한 토익과 토플 성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게 선발된 그들의 모습이 이토록 처참한지 지금이라도 제대로 감지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언론도 인간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언론은 그 영향력으로 제4의 권력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언론에 의해 현존하는 최고권력 현직 대통령도 탄핵 파면한 바 있다. 그런 언론의 민낯이 이렇다는 것은 충격을 넘어 ‘멘붕’이다.

탄핵을 초래한 보도들, 처음부터 검토해서 언론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 언론은 ‘알 권리의 대변자’가 아니라 ‘알 권리의 파괴자요 기만자요 괴물’이다. 우리는 일그러진 거울, 그 괴물을 통해 세상을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