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서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법치에 의한 법치 파괴
17세기 영국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인간에 대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고 했다. 인간은 원래 악하고 이기적이라 늘 늑대처럼 싸운다고 간파했다. 그는 '리바이어던'에서 불안전한 상황을 안전한 질서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왕이 필요하다고 했다. ‘왕은 악이지만 필요하다’는 말로 홉스는 역설했다.
지금 서울의 상황은 17세기 영국과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여전히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4백년이라는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진전이 무색하다.
한국은 지금 지난 3월 10일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이 궐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촛불민심에 의한 시민명예혁명이라고 칭송하고, 반대편에서는 입법, 사법, 제4의 권부 언론에 의한 행정부를 포함한 국가에 대한 반란이라고 맞서고 있다.
의회는 언론과 검찰과 침묵의 카르텔을 맺은 듯 일사분란하게 대통령 탄핵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헌법재판소를 압박해 위헌적 8인 체제에서 탄핵인용 판결을 내리고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그들이 늘 부르는 꽃타령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손으로 죽였다. 현대 정치의 상징 대의민주주의를 죽이고도 광장민주주의 운운하며 승리를 자축하는 그들. 과연 민주주의자인가 민주주의의 파괴자인가. 사상적 철학적 고민없이 수입된 우리 민주주의는 근본에 대한 질문 없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유행가나 운동가처럼 부르며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아직 탄핵사유로 제기된 사안들에 대한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다. 위법여부가 판가름나지도 않았는데 사전 탄핵 후 조사라는 위헌적 행태를 보이며 법치라는 이름으로 헌법수호의지가 없다고 대통령을 파면했다.
20-30대의 세상물정 모르는 기자들이 전교조에게 교육받은 엉터리 사이비 민주주의와 유물론적 역사관으로 공화적 가치는 깡그리 무시했다. 세뇌된 머리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만 되뇌였다. 자기 동조자의 인권은 중요하고 무죄추정은 원칙인데, 반대자의 인권과 무죄추정은 깡그리 무시했다. 더블 스탠다드, 다중잣대를 들이대는 21세기의 프로쿠루테스 특검까지 우리는 암담함의 극을 보았다.
어느 헌법학자의 고백처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 탄핵 파면 사태야말로 법치에 의한 법치 부정이라는 자기 모순과 이율배반이다.
이성을 잃은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폭력이다. 폭력은 잠시 이기지만 결국 스스로 붕괴한다.
법으로 법을 파괴하는 이 무질서와 혼돈과 폭력의 시대. 일각에서는 제2의 5.16, 군의 전면 등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군은 과연 믿을 수 있나. 군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전력파괴를 일삼아온 군에 과연 군으로서의 힘과 양심이 살아있을까. 그래도 군만이 희망이라는 견해와 나라의 주춧돌부터 다시 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지만 결정적인 해법은 아직 안개 속이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한국 내부의 분열과 갈등의 진원이자 추동자인 북한 김씨 권력집단의 존재는 빨리 처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빠를수록 좋다.
내부의 분열을 힐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분열의 단초가 된 국소부위의 상처를 도려내는 일이다. 얼렁뚱땅 국민대통합은 해법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부정해온 암세포의 발원점을 수술할 수 있는 예리하고 힘있는 메스를 가진 정부가 필요하다. 그런 권력의 출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