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세모에 양측 시위대의 만수무강을 바란다

거리에서 우연이던 필연이던 쓰러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

2016-12-28     이법철 이법철의논단 대표

세모(歲暮)를 앞 둔 한국의 수도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 광장에는 두 측의 시위대가 혹한(酷寒)의 거리에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충돌직전에서 대결하듯 구호가 다른 시위를 해보이고 있다. 촛불시위측은 박대통령 대하여 최순실파의 공범으로 대통령직위에서 “내쫓자”는 운동이요, 박대통령 지지측은 “대통령은 무고이다.”며 대통령을 옹호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들이 혹한의 거리에서 각기 구호를 연호하고 목적을 위해 운동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우선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고, 그들 양측이 혹한에 목숨을 희생하는 사고가 전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혹한의 날씨에 거리에서 우연이던 필연이던 쓰러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지켜보고 논평하면서 이웃나라 일본국 같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일본국에서는 종종 큰 사건을 일으킨 인사는 주군과 상사에 대하여 또는 자신의 행동으로 막대한 폐해를 입게 되는 사람에 대하여 속죄와 책임을 지는 진사정신(眞謝精神)으로 사과의 글과 말을 남기고 스스로 할복(割腹)하거나 다름 방법으로 자살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진하여 목숨을 끊는 단행의 이야기는 일본국 역사에 흔한 일이다. 화려한 사쿠라 꽃,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할복하여 죽어가는 일본인들의 책임지는 정신은 장엄하기도 하면서 논란은 있다.

책임지는 할복에 대한 이야기의 대표적이요, 절정의 이야기는 일본국의 수도 도쿄의 국립극장에서 매일 공연되어 박수갈채를 받는 추신구라(忠臣藏=47인의 사무라이) 연극이다. 나는 20여 년 전에 일본국에 갔을 때 추신구라 연극을 감동적으로 보면서 왜 한국은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이순신장군이 조국수호를 위해 장렬히 전사하는 연극은 공연되지 않는 것인가 통탄한 적이 있다.

추신구라는 영화, 연극, 노래 등으로 일본국의 충성과 의리를 대표한다고 한다. 현대적인 전해오는 이야기는 아무리 무섭게 수사 중인 사건이라도 자진 책임지는 할복 사건이 벌어지면 대부분 수사는 종결되고 죽은이는 애도를 받는다. 얼마 전 롯데 회사에 대하여 한국 검찰의 수사가 벌어져 주군 같은 신동빈 롯데회장이 수사 표적의 몸통으로 책임지게 되었을 때, 롯데 부회장 이인원씨는 할복이 아닌 자살로써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일본국이 아닌 한국의 수사당국도 이인원씨의 자살의 뜻을 감안해서인가? 무섭게 나가던 수사는 중단되듯 몸통의 수사는 허망하게 끝났다.

최순실은 어떤가? 그녀는 처음 수사기관에 체포 되었을 때, 개구일성(開口一聲)은 국민들을 향해 “죽을죄를 지었다.”고 자책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변했다.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고액의 변호비를 받고 조언을 해주어 고무 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판단인지, 죽을죄가 아닌 “나는 아무 죄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의 주장인즉 자신에게 퍼붓는 모든 죄상은 모두 허위날조요, 무고라는 주장인 것이다. 그녀의 죄의 유무(有無)는 법정에서 밝혀지겠으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촛불시위는 일어났고, 박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되고, 헌재의 심판에 운명이 맡겨졌다. 최순실은 아직까지 책임을 통감하거나 진지하게 “박대통령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의 일언은 언론보도에 아직은 없다.

최순실도 “나는 죄가 없다.”는 주장이고, 박대통령도 “나는 사적인 이익을 취한 바 없다.” 따라서 나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최순실 사건에 “죄인은 누구인가?” 무관한 국민들인가, 애국가를 부르며 촛불시위를 하는 애국자들인가? 최순실은 진사정신(眞謝精神)에 대한 각오는 전혀 없는 것 같다.

최순실 사건을 논평하는 일부 보수논객들은 허구헌날 빨갱이 타령인가? 무슨 근거로 촛불시위에 대하여 빨갱이 다령인가? 조갑제 기자는 “최순실은 마녀 사냥, 박근혜는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써 보였다. 국민들은 동의하는가? 진짜 보수논객이라면 내부에서 북의 빨갱이 보다 더 무섭게 자유 한국을 망치고, 정직하게 사는 국민에게 상실감을 주는 “검은 돈을 챙기는 대도들”을 청소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교도소에서 TV를 통해 최순실 사건을 보는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첫째, 대통령의 권력이 협조해주면 단시일에 재벌들의 검은 돈을 수금하여 대졸부 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쉽다는 것을 절감할 것이다. 둘째, 권력과 돈만 있으면 국회청문회고, 특검이고 의사의 비법대로 무슨 공황장애라는 병명으로 출석거부를 할 수 있고, “나는 아무 죄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며 개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요,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실감나는 최순실 사건이 아닌가.

최순실 국정농단의 사건은 이제 정의감이 있는 국민들과 사법부의 공정한 판결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딱한 세상이 되었다. “나는 아무 죄도 없다.”는 주장을 사법부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판결을 해버린다면 정의구현을 바라는 국민들, 촛불시위측은 한강에 투신하거나 아니면 혁명적인 직접행동밖에는 한국사회의 부패를 정화할 수 없다는 항간의 비등하는 논평이다.

한국정치는 건국한 지 70년이 되어도 대통령직은 불문율(不文律)처럼 검은 돈으로 대졸부 되는 특권의 자리라는 여론의 혹평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특히 문민정부 들어서 그 폐해는 막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사기꾼들 가운데 태산북두(泰山北斗)는 일부 대통령들이요, 한국 도적들 가운데 대도(大盜)는 일부 대통령들이라는 비난 여론이 어느 시절이나 도래할 것인가?

“역대 대통령치고 검은 돈 안 먹은 놈 있나? 왜 박근혜만 사비하는 거야?”라는 태극기를 흔들며 박대통령 지지하는 운동가도 있다. 이러한 한국인의 정치의식이 계속된다면 100년이 지나도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 민주화 정치는 난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대통령감과 국회의원들 고위 감투 쓴 자들은 선진국에서 수입해오자”는 자조(自嘲)섞인 말을 일부 국민들은 토로할까.

끝으로, 병신년이 저물고 정유년이 오고 있다. 해가 바뀌어 가는데도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측은 박대통령을 의미하는 구호인 “대도(大盜)와 국정농단의 주범은 퇴진하라”는 뜻의 구호가 충천하고, 박대통령을 지지 옹호하는 일부 국민은 태극기를 흔들며 박대통령을 의미하는 “대도는 아니다. 전부 빨갱이의 무고다!”는 뜻의 구호를 쉬지 않고 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빨갱이”라는 구호는 너무하지 않는가? 이 세상 불변의 진리는 인과응보이다. 하지만 양측이 혹한에 유혈을 연상하는 충돌이 있어서는 안 되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양측 시위대의 만수무강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