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시장 안병용에게 이방원과 같은 숙청의 칼날을 기대한다

2016-10-13     문양휘 대기자

조선의 제3대 국왕인 태종은 1367년(공민왕 16)에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로,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이다.

이방원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태조의 사랑을 받았다. 자라면서 유학 공부에도 심취해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17세가 되던 1383년(우왕 9)에 문과에 급제했지만, 그에게는 아버지 못지않은 무인의 기질과 그보다 큰 야망이 있었다.

이방원의 야망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392년(공양왕 4)에 정적인 정몽주를 제거를 시작으로 신권정치를 부르짓던 정도전을 살해한 이후부터이다. 당시 정몽주는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이성계가 이색과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정몽주는 이성계와 같은 친명파로서 위화도 회군을 지지하고 고려의 정치 개혁에도 동참했다. 그러나 역성혁명에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역성혁명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방원은 1389년(창왕 1) 10월 11일 이성계의 생일날 정몽주와 변안렬을 불러 〈하여가〉를 부르며 최종적으로 역성혁명에의 동참 여부를 타진했다. 그러나 정몽주는 〈단심가〉를, 변안렬은 〈불굴가〉를 불러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래서 아버지 이성계의 반대에도 기어이 정몽주를 죽이고 만 것이다.

정몽주를 격살하고 역성혁명의 1등공신이 된 태종은 스스로 왕좌에 오르기까지 자신의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해 나갔으며, 형제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정권을 잡은 후에도 왕권에 도전한다던가 왕권정치에 걸림돌이 되는 개국공신은 물론 처남들까지 사약내리거나 척살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살생을 일삼은 이면에는 왕권정치의 강화와 본인의 왕권쟁취에 대한 정통성을 확보키 위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최근 의정부시 체육회 간부들의 공금횡령사건으로 의정부시 체면이 (나락)奈落으로 떨어졌다. 시민들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터졌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공금횡령사건은 시체육회 내부갈등에서 불거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의정부경찰서는 지난 6일 시체육회 A모상임부회장을 업무상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 불구속‘으로 송치했다.

경찰은 A모 부회장이 500여만원의 이사회비등을 사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정부지검 또한 시체육회 B과장이 공금을 횡령혐의로 시체육회 관계자들을 소환,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의정부시 체육회 공금횡령과 관련, 의정부시 체육회 회장인 안병용시장에게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은 수사단계에 있는 사건으로 가타부타 논할수 없지만 공금횡령의 유,무죄를 떠나 이번사건과 연루된 체육회직원들에 대해 안시장은 체육회회장으로 책무를 다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위해 조선 3대국왕인 태종이 왕권강화와 정치를 위해 개국공신과 친인척마저 살생을 서슴치 않았던 것처럼 안시장도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의정부시 체육회를 (환골탈태)換骨奪胎 시켜야 한다. 즉, 태종의 왕권정치(안병용의 시체육회 정상)의 등식을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