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차사

[정노천의 우리역사 산책]

2016-06-17     정노천 논설위원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동생들을 주살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함흥에 가 있던 태조 이성계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태종이 보낸 사자들이 오는 족족 죽여 버리자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났다.

부왕을 맞을 준비를 하던 태종은 둑섬에다 큰 차일을 치면서 굵고 높은 기둥을 세웠다. 도착한 태조가 태종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태종을 향해 별안간 활을 쏘자 급히 기둥을 안고 피했고 화살이 기둥에 꽂혔다.

이후 ‘화살이 살벌하게 꽂혔다.’는 의미로 ‘살곶이벌’로 불렸다는 설이 있고 한양대 옆 중랑천을 건너는 돌다리가 살곶이 다리가 됐다.

물론 함흥차사의 이야기를 스토리 텔링한 것이리라 본다. 일설에는 아예 태조를 감금하고서는 태종이 반론을 펴는 무리들을 함흥으로 보내서 제거하는 장치로 했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실제 함흥은 이 땅에 있기 보다는 대륙의 00를 말하는 것으로 지방자치제가 관광수입의 일원으로 구리시가 아차산을 스토리 텔링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