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태기. 조리형국 같은 천하명당도 한계점 있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2016-05-20     김호년 선생

초승달(新月)형국이 만월을 전제로 한 선택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기가 일어나 운세가 뻗어나가지만 세월이 가면 보름달이 기울듯 쇠퇴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물의 형상과 그 이치에서 지기를 따지는 형국론에서는 어떤 길지라도 한계점이 있으며 그에 따르는 부대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삼태기 또는 조리형국도 그런 예에 속한다. 이런 형세는 모두 재물을 긁어 모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처음에는 운세가 뻗어나가지만 삼태기나 조리는 가득차면 한꺼번에 엎질러져 버리는 관행이 있어 망하게 되면 아주 망한다고 본다.

경북 경산군 용성면(龍城面) 곡란동(谷蘭洞) 최씨의 집은 바로 조리 형국으로 잘 알려진 집이다. 최씨 집 앞산은 해발 435미터의 용산(龍山). 원래 그 모양이 매와 비슷해서 매봉으로 불렸으나 이 산에 살던 구렁이가 하늘로 승천한 뒤로 용산으로 바뀌었다는 내력도 있다.

용산이 이곳에 있게 된 것은 조선조 때 어떤 선비가 꼬챙이에다 산을 꿰어 걸어가는데 이를 본 사람들이 신기해 ‘산이 걸어간다.’고 소리치자 도사가 깜짝 놀라 이곳에 떨어뜨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산줄기의 한 자락이 최씨 집터를 향해 뻗어 내려왔는데 바로 이 능선이 조리의 자루에 해당되고 최씨의 집터는 조리바닥이라는 것.

조리는 쌀을 일 때 쓰는 부엌용구. 물속에서 쌀을 담아 올리지만 엎으면 다 쏟아지게 되므로 한 대(代)에서는 재산을 모으지만 다음 대에서는 모두 써 버리는 과정을 되풀이해 왔다는 것이다.

산세가 좁은 곳에서 좌청룡 우백호를 따지다 보면 조리형이나 삼태기 형국은 많을 수밖에 없다. 광산촌이 대부분 삼태기형을 이루고 있는데 광부들 중엔 죽도록 벌어서 하룻밤 노름에 전재산을 날리는 사람이 많다.

돈 벌면 이사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들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조선조 학자 홍만선(洪滿選 1643~1715)이 쓴 ‘산림경제’의 복거조(卜居條)에도 집터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그도 ‘사면이 높고 가운데가 낮으면 비록 부자일지라도 점점 가난해지므로 평탄한 것이 가장 좋다’고 기술하고 있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