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빨갱이 신부들이 내놓은 15구의 으깨진 얼굴, 누구의 소행?
북한특수군 소행일 확률 매우 높아, 공수부대 소행이라는 증거 전무
광주의 빨갱이 신부들이 내놓은 15구의 으깨진 얼굴, 북한특수군 소행일 확률 매우 높아, 공수부대 소행이라는 증거 전무
광주 신부들이 1987년 제작한 사진집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과 1990년 북한이 남한에 인쇄해 내려 보낸 "아! 광주여!"에는 15구의 으깨진 얼굴 사진들이 똑같이 들어 있고, 그 중에는 톱으로 자른 얼굴이 있다. 그런데 얼굴을 톱으로 자른다는 모략 개념은 북한 신천박물관에 미군을 만행집단으로 모략하기 위해 창작해 놓은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광주 신부들이 사진집에 실은 '톱으로 자른 얼굴'은 북한이 저질렀고 북한이 그 사진을 찍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공수부대는 톱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그렇다면 광주 신부들이 제작한 사진집에 게재된 젊은 얼굴들은 북한특수군의 작품일까, 공수부대원들의 작품일까?
광주에 온 황장엽은 남한의 한 청년을 연행해다가 죽였다. 이 사실은 사진으로 명백하게 증명돼 있다. 우리는 광주에서 북한특수군이 남한의 한 청년을 살해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공수부대가 젊은이들을 함부로 죽인 사실을 단 한 건도 입수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신부들이 사진집에서 게재한 청년들의 비참한 얼굴들은 북한특수군의 작품일까 공수부대의 작품일까? 공수부대의 작품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북한특수군의 소행이라는 정황증거는 여러 개 있다.
도청 앞 발포는 모략의 극치다. 5월 21일, 광주일원에서 발생한 민간 사망자는 61명이다. 이 중에서 28명은 도청과는 거리가 먼 다른 곳들에서 사망했고, 33명만이 도청 앞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도청 앞 사망자 33명 중 20명은 칼에 찔리고 몽둥이에 맞아 사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당시 도청 앞 상황은 계엄군과 시민이 수십 미터의 거리를 두고 대치해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수대에 맞아 죽고 찔려죽는 일이 발생할 수 없었다. 그러면 이들 20명은 누가 죽였는가? 여기에 더해 13명이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총상 13명 중 9명이 카빈총에 의해 사망했고, 4명은 총기불상으로 기록돼 있다. 한마디로 5월 21일에 칼에 찔리고 몽둥이로 맞고 총에 의해 사망한 61명 모두가 계엄군과는 무관한 사망이었던 것이다.
광주에서의 총상 사망자 70% 이상은 북한특수군에 의해 사망, 맞아 죽고 찔려 죽은 사람들도 대부분 북한특수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안기부 및 계엄군 자료)
아래는 황장엽이 이끄는 북한특수부대가 광주에서 남한 청년을 체포해다가 남조선 스파이로 몰아 살해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