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갑 충렬탑 관리가 엉망이다

원주시는 무엇을 하는지 한심한 탁상행정

2015-05-06     김종선 기자

“1592년 7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장 모리 요시나리가 원주 영원 산성으로 쳐들어오자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싸웠다.”라고 역사에 기록된 김제갑원주목사 이를 추모하는 충렬탑이 원주시 학성동 원주역앞 작은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에 세워진 충렬비(忠烈碑)는 45년이 지난 원주의 역사적인 사적이다. 그러나 원주시의 버림받고 있어 무속인 들의 기도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충렬탑 뒤편 계단에는 촛불과 화초 무엇인지 모르지만 검은 비닐봉지에 쌓여진 물건 등이 세워져 있고, 탑은 시커멓게 변하여 원주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을 추모하는 탑인지를 의심케 하는 광경이다.

무속인 들이 신앙의 정표를 가져 다 놓은 지가 수년이 지났어도 원주시는 눈길한번 주지를 않고 있다. 무속인 들의 징표는 수개월에 한 번씩 바뀌어 진열되고 있다.

원주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이면 무엇하나 후손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는데 김제갑목사가 하늘에서 내려 보면서 한숨을 쉴 것이다.

김제갑 목사와 관련한 글

1966년 강원도 애국유족부활위원회에서는 원주역전에 그를 추모하는 충렬탑(忠烈塔)을 세웠고, 이곳에는 1970년에 세워진 충렬비(忠烈碑)가 남아있다.

김제갑 목사의 충렬비에 기록된 명문(銘文)에는, "죽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죽어야 할 곳에서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 오직 군자라야만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는 것이다. 위급함을 당하여도 평소와 같이 보고 충성심과 분개심을 가다듬어 끝과 시작이 다르지 않았도다.

신하는 충성으로 죽고, 부인은 죽어 정절을 지켰으며, 아들은 죽어 효도를 다하였으니 여기 만고(萬古)에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을 남겼도다. 치악산(雉岳山)이 동쪽에 우뚝 솟고 봉천(鳳川)은 서쪽으로 흐르니 선생의 이름과 함께 길이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1592년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겸 순찰사(巡察使)와 원주목사(原州牧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