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사태의 영웅 장중한 스토리

장중한은 5.18 당시 연고대생 600명으로 위장한 대남공작조의 일원

2015-04-03     하봉규 논설위원(부경대 교수)

김대령 박사의 '역사로서 5.18(비봉출판사)' 2권에는 5.18의 영웅 장중한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상세하게 소개 되어 있다. 그는 북한이 양성한 정예 대남공작원으로 수십차례 남한을 드나들었던 신화적 인물이었다.

장중한은 5.18 당시 연고대생 600명으로 위장한 대남공작조의 일원으로 영웅적으로 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5.18 당시 한국군 최정예 전투사단으로 광주로 긴급투입된 20사단은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사단장 집차를 위시한 14대의 군용차량을 낫과 도끼로 무장한 50여명의 시민군(대남공작원)들이 급습한 것이다. 당시 그들은 용맹과 날렵함으로 무장군을 패퇴시켰을 뿐 아니라 감히 보복할 엄두도 못하게 했다.

대남공작조는 이때 탈취한 군용차량으로 아세아자동차에 가서 360여대의 군용차량을 징발하는 신속함도 보였다. 또한 이 차량들을 통해 전남지역에 산재한 40여곳 무기고를 급습하여 다량의 무기를 확보하여 시민들에게 안긴 것이다.

장중한은 무장군인들을 상대한 활극 뿐 아니라 예비군용의 노후된 무기로 긴급투입된 공수부대를 상대로 궁지에 몰아넣기도한 공작조의 일원이었다고 알려진다. 그는 후일 계엄군의 최후의 진압작전 직전 신분노출을 감추기 위해 작전상 철수하고 무사히 월북하여 인민영웅과 동급인 2중칭호를 수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웅 장중한의 극적인 반전은 복무후 27년만에 찾은 부모님의 잔치에 참석하면서 벌어진다. 그가 고향길에 타게된 열차 상급칸에 불법으로 공병국 군인들이 승차하면서 행패를 부리자 같이 동승한 대좌(대령)가 이를 제지 하다가 하극상의 집단 폭행사건으로 번지게 되자 장중한이 십수명의 공병군인들을 단신으로 제압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또한 군인들에게 고급담배를 주면서 잘 타일러 보냈다.

하지만 이것은 보복으로 이어졌다. 상처투성이로 귀대한 부하들을 본 대대장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대대장은 소대장을 비롯한 당사자들의 의사를 짓밟고 80명의 인원을 차출하여 장중한의 집으로 들이닥쳐 일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중한 본인을 포함한 21명이 현장에서 죽게된다.

그리고 사건은 이로써 종결되지 않았다. 5.18 영웅의 억울한 죽음에 당은 다음날 사건에 깊이 개입된 대대장 이하 13명을 즉결처분하고 나머지 중대 전체를 해산하고 1년간 노동단련대로 보내고 전원 퇴역조치 시킨 것이다.

우연히 장중한을 만나고 사건에 개입된 탈북 군인은 강제 퇴역 이후 다시 장중한 가족(홀어머니)을 찾아가 사과하고 장중한이 남긴 유고집을 보게 된다. 그의 일기에는 집안 배경이 나빠 어린시절 특수부대로 차출되어 27년간 훈련과 침투활동을 수행한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5.18 당시의 영웅적 행적과 함께 후일(1989) 김일성의 초청으로 방북한 문익환에게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한 것도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웅을 죽인 소속 군인으로 힘들게 지내게 되고 결국 탈북하여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