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근혜회의'란 말이 회자 된다

여론지지도의 급락에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으며 자체적 비판도 없다

2015-02-07     하봉규 논설위원

옛날 일본전국시대 말기 '오다와라회의'란 말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대권을 잡을 때 일이다. 히데요시가 조정으로부터 간파쿠(관백)로 최고 실권자로서 당시 일본 동쪽 지역을 5대에 걸쳐 장악한 호조집안은 히데요시에 반발하여 상경도 통일노선도 불참하며 반발했다. 그리고 거성 오다와라에서 성과 없는 회의만 하다가 화평과 전쟁에 대한 대비도 없이 마침내 히데요시군이 침공하자 싸움도 못하고 주군을 비롯한 중신들은 자결하고 흔적없이 사라진 일을 비웃는 말이다.

'박근혜회의'란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와 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은 국정현안이나 여론과 동떨어진 출처불명의 자료를 읽고 회의는 진지한 토론이나 논쟁도 허용되지 않아 시간만 허비하는 공염불회의를 일컫는다. 결국 계획, 로드맵, 실행, 조정과 같은 체계적 집행이나 담당부처간의 협의 등 피이드백이나 현장 점검도 없는 그야말로 대국민 보여주기식 쇼(적자 생존, 머리 박고 그림 그리기 등)인 것이다. 박근혜식 회의는 비정상의 절정이다.

대개 무능한 정부는 뚜렷한 비전이나 계획이 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나타난 현안에 안이한 대응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이러한 집행과정에 대한 소신도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못한다. 최근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현안이나 정책계획을 발표하지 못하고 청와대 자체의 각종 추문이나 의혹에 대해 변명하고 수정하는 청와대 홍보에 전념하고 있다. 더욱더 한심한 것은 최근 국정농단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여론지지도의 급락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으며 자체적 비판도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은 재임시절 "참모들의 반대가 없는 것은 진정한 충정이 없는 것" 이란 말을 자주 했었다. 참모는 단순히 부하나 하인이 아니라 동료며 멘토이며 때로는 무서운 적이 되어야 한다. 흔히 집단지성을 말할때 내부적인 도덕성과 비판이 없다면 자체가 집단반지성이 된다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약하지만 강한 것은 이러한 자체 규범과 소통의 가능성 때문이다. 진정한 지도자(leader)는 보스를 넘어 진정성(authenticity)을 가진 권위(authority)를 찾는 것이며 또한 이것이 최종적 역량인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미래가 극히 암울한 것은 비판과 반성, 조정과 사과와 같은 민주적이고 소통적 요소가 제거된 불균형에 있다고 하겠다. 결국 국정도 정해진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상정하고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으려는 동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배척된 것이라면 "비정상의 정상화"의 가능성 자체가 비정상인 것이다. 비정상이란 권력을 가진자가 약자를 괴롭히며,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며, 부자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소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증오와 투쟁' 구조이나 "자체 비판과 수정, 조정 기능의 원천적 배제" 자체가 더 큰 비정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