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를 잃어버린 한국 교육
한국 교육은 신화와 실제의 격차가 경이롭다. 주지하다시피 세계적으로 소문난 것이 한국의 교육열이다. 넘쳐나는 사교육비와 자녀교육의 관심은 가히 신앙에 가깝다. 하지만 교육현실을 조금만 알게되면 경멸의 대상이 된다. 방향이나 시스템이 잘못되면 투자할 수록 결과는 반대로 된다는 소위 '동물농장'의 원리가 적용된다.
동물농장에서 전기가 곧 해방이라는 슬로건하에 우직한 말은 뼈가휠 정도의 노동을 감내한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나빠져 결국 비참한 종말로 이어진다. 한국은 과거 교육적 투자에 성공하여 단기간에 기초숙련공을 양성하여 세계사적 압축산업화에 성공한 사례이다. 하지만 초기의 성공이 반드시 성공의 지속을 의미하진 않는다. 무엇보다 지난 30년은 양적 팽창속에 속빈 강정이된 경우이다.
한국의 실패는 복합적이면서 동시에 단순화 된다. 무엇보다 시대상황 인식과 미래에 대한 예측이 없었다. 한편으로 국가발전에 도취되어 예리한 진단, 특히 한국적 상황에 개념이 없었다. 산업화 초기 일인일기는 유용한 정책이었으나 이후 이것은 경제동물, 천민자본주의로 가는 것이었다. 산업화 초기엔 한국은 전쟁의 경험과 전통적 윤리와 같은 절박함과 동양적 도덕관이 존재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서양의 과학과 기술은 날개를 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초기의 성공은 오히려 화가 되었다. 민주화와 함께한 한국병이라는 국가리더십의 실종은 자폐적 민족주의, 집단적 아노미현상으로 이어졌다. 윤리, 정신, 문화가 경제, 성과, 대중에 노골적으로 추월당한 것이다. 그 결과는 불과 민주화 10년후 IMF로 나타났다. 너무 이른 샴페인, 부패공화국이란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댓가였다.
IMF는 하나의 경과였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 영향은 직간접적이다. 이것은 또한 교육에서도 나타난다. 원칙을 잃은 사회는 댓가를 지불한다는 것이 또한 원칙이 된다. 한국 교육이 참담한 것은 아직도 잃어버린 원칙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무릇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법이니 우리 교육의 한계이다.
교육이 추구하는 목표는 진리이고 지성이지 결코 지식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식이 진리를 대체했다. 문제는 지식(knowledge)은 다차원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상식적 지식, 과학적 지식, 양식적 지식, 영성적 지식이 그것이다. 상식적 지식이란 특정 시대나 사회에 적용되는 대중적 지식이며, 과학적 지식은 전문화되고 체계화된 지식의 대명사이며, 양식적 지식은 역사, 철학, 문학, 예술 등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한 문화적 교양이며, 영성적 지식은 세계관, 인류애, 시대정신과 같은 정신적 영역이다.
결국 한국 교육의 경우 지식은 과학적 지식에 천착한 결과이다. 과학은 능력과 창조성이 특별한 영역이나 진정한 잠재력은 과학내의 소통과 여타 지식, 특히 양식(교양)과의 교류에 있다. 바로 지성(intellectuality)이다. 지성은 특정 지식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열린 사고방식으로 버트란트 러셀이 말한 지식세계에서 이종의 요소를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사를 주도하는 서구문명의 복판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정립된 서양 교육의 대원칙 즉 교양과 전쟁술(체육)의 결합이 있다. 철학, 문학, 예술, 논리학 등으로 구성된 교양은 이름 그대로 사랑스런 자식을 회초리를 때려서라도 가르쳐야하는 교육이었고 이것은 체육과 함께하여 시너지효과를 창출한 것이다. 그리스의 위대한 발명인 교육원칙은 로마와 중세를 거쳐 오늘에 이르른다. 이 시간 현재에도 교육은 독서와 체육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보고는 지속되고 있다.
반면 한국 교육은 어떠 한가. 입시에 매몰되어 독서와 체육은 팽개쳤다. 심지어 유치원 이전 학습지를 통해 편향된 지식을 가르친다. 단견적 조기교육으로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독서를 없앤 것이다. 그 결과는 한글이란 가장 창조적이며 쉬운 활자 덕에 가장 낮은 문맹율에도 불구하고 책맹과 판단력이 없는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쇄 혁명과 근대화 과정에서 독서 국가가 되었으며 국제화시대에 맞는 시민윤리교육을 국가경쟁력으로 인식하고 체계화한 선진국과 대비되는 것이다.
지식자본주의시대인 오늘날 이미 "아는 것이 힘이다"란 베이컨의 시대는 아니다. 이제 인생은 "요람(동화)에서 러시아 소설"인 지식복지시대이다. 3차산업혁명, 탈산업사회, 메가트렌드, 신경제, 무형자산, 사회자본, 위험시대, 창조계급 등 현란한 시대상을 관통하는 것은 교양과 독서이다. 일찍이 빈한하여 제도적 교육에서 배제되었으나 철강왕으로 자리매김한 앤드류 카네기가 자신의 성공기반에는 도서관이 있었다는 술회와 생전 2,200 개의 공공도서관을 기증한 것은 전설이자 현실이다. 벤처신화의 주인공 빌게이츠도 자신의 성공에는 도서관이라고 회고하고 자택에 수만권의 개인도서관을 만든 예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가장 위대한 문명인 고대 그리스가 진정 위대한 것은 교육원칙의 발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