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코드, 코드, 코드
글로벌 한국은 새벽의 여명처럼 희미하다
한자(漢字)는 뜻글자이고, 한글은 소리글자이다. “朝鮮”을 지금 한국인들은 “조선”이라고 소리 내고, 뜻으로 풀면 “고요한 아침(Morning Calm)”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 한자를 소리기호로 사용한 것이 이두(吏讀)인데, 숙신(肅愼)과 여진(女眞)은 조선의 또 다른 이두식 표기라는 신채호(1880-1936)의 주장이 대체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그런데 한글의 “코드”가 영어 chord, cord, code와 같이 세 가지로 표기되고 보니, 옛날 우리 겨레의 이름이 지금처럼 “조선”이었는지, “주신”이었는지, “치우 신”이었는지, 잘 알 수 없다.
대학입학 수능시험의 답안처럼 만든다면, “노무현 코드”의 정답은 7개 중에 택일할 수 있다. chord, cord, code 세 요소로 된 집합의 부분집합은 각각 하나씩 3개, 둘씩 짝지어 3개, 셋 모두 1개, 이렇게 합쳐 7개이다. “그건 컴퓨터라 할 때의 그 코드야”,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수년간 강단에서 컴퓨터구조(Computer Architecture)를 가르쳤던 기억을 회상했다. 즉 코드(code)의 의미를 습득하려고 애썼던 고통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무튼 코딩(coding)이란 사람이 기계에게 지령을 내리는 프로세스이다. 따라서 code는 사용자의 특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류는 침팬지와 가장 닮았다고 한다. DNA가 99%까지 서로 같다는 것이다. 차이가 1%밖에 나지 않으니까, 인간이 짐승보다 더 잘났다고 으스대지 말렸다, 이런 식으로 큰소리치는 분자생물학자가 있다. 저서 “이기적 유전자”로 뜬 리차드 도킨스가 그 대표적 인물로서 마치 “코페르니쿠스 해탈”을 체험한양 폼을 잡는다. 하지만 DNA는 code로 구성된 정보인데, 그는 code의 개념을 chord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악보에서 chord를 바꾸면 12율(律) 기본음의 높이만 달라질 뿐이지만, 컴퓨터에서 code를 바꾸면 전혀 다른 체제가 된다. 스파이에게 내린 지령은 1%가 다른 code이든 10%가 다른 코드이든 다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호주에 연수차 갔었던 코드(cord) 이야기다. 이 체험은 자본주의의 자유와 시장 체제를 새삼 깨닫게 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시드니 번화가에 자리 잡은 켄싱턴 공원 근처 어느 호텔에 투숙했었다. 그런데 실내 벽에 세 가지 형태의 전기 콘센트가 설비되어 있다는 것에 대하여 나는 놀라며 감탄했다. 우리나라는 220 볼트, 60 헤르츠 교류전력선 하나뿐인데 비하여, 시드니는 세 개의 회사가 소비자에게 경쟁적으로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전력선의 콘센트는 전압과 주파수가 서로 다른 까닭에 특정 전기제품을 보호하기 위하여 맞춤형 디자인이 요구된다.
전기코드(cord)로 상징되는 선형(linear) 인맥은 명령이 직통되는 마피아 체제를 떠올리게 한다. 만약 대통령이 “cord 인사”를 했다면, 이때 지명된 인물은 가신(家臣) 출신 정치인일 것이다. 여기에 비해, 음악코드(chord) 식의 “망형(network) 인사”를 단행했다면, 이런 경우는 대통령 주변에서 여러 가지 정책을 제시하는 참모출신 인재를 들어 썼다는 의미가 강해진다. 그렇다면, 전산코드(code) 식의 “노무현 코드 인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념형 인사”가 될 것 같다. 고인은 성품이 소탈하고, 마음이 약해서 소시민의 정서에 잘 어울렸지만, 그의 진보적 이념은 정치가로서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는 강성적인 보완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무현의 코드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고유의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김정일 앞에서 중심이 흔들렸다. NLL을 “방북의 진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리허설을 연출한 것이다. 그때 그는 속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남북이 통일된다면 어차피 NLL은 물결 위에 그어놓은 선일뿐이지.” 일생일대의 역사적 현장에서 화끈하게 풀어보자, 그러면 통 크다는 위원장이 뭔가 큼직한 답례품을 내놓겠지, 이런 기대치가 그에게 있을 법 했다. 그러나 김정일에게 노무현은 하수인에 불과했지, 거래할 맞상대가 아니었다. 일방적 계산착오, 이런 게 발생했다. 그래서 돌아온 후에 사초(史草)를 지우고, 없애고, 난리가 난 것이다. 결국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그는 부엉이처럼 죽었다.
한 집안의 가장도 자기 식구에게 자랑스러운 임종을 남기고 싶어 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됐다면, 큰 업적 하나쯤은 국가와 역사에 남기고 싶을 것이다. 남북통일은 대통령의 일번지 과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북(從北) 통일이라도 괜찮은가. 아니다. 자유와 민주는 통일의 원칙이요 출발인데, 북한의 주체는 인민이 아니라 수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계에 포진된 주사파(主思派) 네트워크는 지금도 “진보의 탈춤(?)”을 연출하면서 “김씨왕조 통일”에 도움주고 있다. 그러나 온전한 통일은 성취될 때까지 뜸 드리고 기다려야 한다. 참고 견디다 보면 안팎의 분위기에 따라 어느새 그림자처럼 다가올 것이다.
인맥 네트워크에는 마당발이 허브(hub)이다. 국회의원 연결망에도 친연관계에 따라 곳곳에 중심이 있다. 인터넷은 WWW가 대표이고, 국내 검색이용률 으뜸인 “네이버”에서 몇 년 전에 뽑은 통계에 따르면 박근혜가 단연 정계의 중심인물이었다. 세상은 바탕이 카오스이다. 불확실한 생태망(ecological network) 같은 21세기 국제정세에서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국정운영이 안정감 있고, 예측 가능한 미래가 요구되는 현실에서 확실성이 보장되는 인물 찾기는 정말 어렵다. 소설에서 설정된 제갈량 캐릭터는 확률적으로 우연(random)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