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문화유산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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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문화유산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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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문화유산도 보존하여 교훈으로 삼는 자세 필요

 
   
  ^^^▲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장면^^^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와 95년의 삼풍 백화점 붕괴는 모든 사람에게 경악과 비애를 안겨다 주었지만, 그 이듬해에 있었던 어느 건물의 붕괴는 모두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사고로 인한 붕괴가 아니라 인위적 철거였는데, 건물 곳곳에 미리 폭약을 설치 한 후 사회 각층의 여러 인사들을 모아 놓고 성대한 폭파식을 거행했다. 건물의 폭파와 해체가 그렇게 즐거운 축제였던 것은 일찍이 보지 못했는데, 96년 11월 13일 뜨거운 박수갈채 속에 폭파되었던 그 건물은 바로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세웠던 그 건물은 해방이 된 후에는 정부청사로 쓰이다가, 80년대 초반 정부청사가 과천으로 이전한 뒤에는 잠시나마 국립중앙박물관으로도 사용되었고, 그 후 끊임없는 철거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당연히 철거되어야 한다는 지배적 의견 속에 건축계와 일부 문화계에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건축물 자체로도 그것은 몇 안 되는 과도기의 근대건축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대개 문화유산 하면 석굴암이나 불국사 등 자랑스러운 것만 생각하지만, 정반대의 것도 있다. 이를 부(負) 문화유산, 즉 ‘네거티브 문화유산(혹은 ‘마이너스 문화유산’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이라고 하는데, 인류의 과오를 보여 주는 문화유산을 말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르샤바 역사 지구, 히로시마 원폭 돔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인류 역사상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유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매년 여름이면 일본 히로시마에서는 진귀한 행사가 벌어진다. 1945년 8월 원자 폭탄이 떨어진 것을 기념하는 행사인데, 이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밀려온다. 일본 정부는 폭탄에 맞아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 이른바 ‘원폭 돔’을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그 주위를 원폭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매년 폭탄이 떨어진 날이 되면 히로시마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그 곳에 모여 그 날의 참상이라도 재현하듯 일제히 땅바닥에 드러눕는 연와(連臥)시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이 피폭을 당한 이유야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지만, 매년 얼마나 성대한 행사를 치렀는지 이제 일본은 ‘동아시아의 침략자’ 보다는 ‘원자 폭탄의 피해자’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았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나치의 잔학성에 치를 떨듯이, 히로시마의 원폭 돔 앞에서도 미국의 잔학성에 몸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명해진 원폭 돔은 마침내 1997년 1월 세계 유산 위원회에서 네거티브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 때 우리나라의 석굴암, 종묘, 불국사도 함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조선 총독부 건물은 해체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네거티브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일본이 원폭 피해자 이기에 앞서 침략자였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바로 코 앞에 세워져 500년 사직의 숨통을 조르고 있던 이 건물은, 위치상 철거가 불가피한 실정이었다. 논쟁이 뜨거웠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인데, 그렇다면 완전 해체보다는 차라리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네거티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말고도 조선 총독부 건물은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근대건축물 중의 하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관광 명소가 되고 있는 건물은 불국사나 경복궁 같은 고건축 아니면, 63빌딩이나 코엑스와 같은 아주 현대적인 건축물 뿐이다. 분명 과거와 현대 그 사이의 과도기적인 건물들이 있었을 텐데, 이들은 지금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 유명한 화신 백화점도 개발과 상업주의 앞에서 무력하게 철거될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한국 은행과 서울역, 덕수궁 석조전 등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 나라의 근대사는 일제시대와 6.25로 얼룩져 있었고, 근대 건축물 또한 대개 이 시기에 지어졌기 때문에 일제의 잔재나 전쟁의 상처 라는 오명을 쓰고 항상 제일 먼저 철거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사회가 안정되고 성숙해 짐에 따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요구도 심화되는데, 이제 우리도 아픈 역사를 무조건 지우려고만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잘 보존해서 후세에 교훈으로 삼게 해야 할 때다. 또한 건축물도 문화의 일부로 볼 때, 일제 시대나 해방 후 혼란기의 건축물을 무조건 철거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맥을 끊는 것이 된다. 유서 깊은 도시의 아름다움은 켜켜이 내려 앉은 시대의 나이테 속에 있다. 아픈 과거가 묻어 있는 건축물이라 해도 그것을 잘 보존하여 교훈으로 삼는 보다 성숙한 자세가 필요할 때다.

 
   
  ^^^▲ 덕수궁 중명전^^^  
 

덕수궁 중명전이 썩어가고 있다고 한다. 유형문화재 제 53호조 지정된 이 건물은 궁궐 내에 지어진 최초의 양식 건물로서 고종 황제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황제는 며느리인 순종 비 윤씨를 맞아들이면서 피로연 장소로도 사용했는데, 그 이후 을사 보호조약이 바로 이 곳에서 체결되었고 그 때 윤씨는 병풍 뒤에서 어전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옥쇄를 치마폭에 숨기는 것으로 마지막 저항을 했던 아픈 상처도 함께 가지고 있다. 지금은 어느 개인 기업의 소유로 되어 있은 이 건물을 서울시가 매입하여 한국 근대사 박물관으로 개조할 예정이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유보상태이다. 더구나 노후한 상태로 오랜 기간 방치되었기 때문에 내부 균열이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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