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사업에 실패한 김 형의 아버지가 서울에 김 형을 찾아오셨다. 타향에서 고생하며 공부하는 자식을 아버지는 중국집에 데리고 갔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장면을, 김 형은 우동을 시켰다. 그리고 오랜만에 먹는 중국음식을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면과 해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고 나서 김 형은 우동사발을 들고 국물까지 맛있게 마셨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면서 다 마셔가는데, 김 형의 눈앞에 뭔가 까만 것이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시력이 무척 좋지 않았던 김 형은, 보리차 건더기거니 하며 무심히 국물을 끝가지 다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우동그릇에 든 물이 점점 줄어갈수록 그 까만 것이 김 형의 눈앞에 조금씩 다가오면서, 그 모양이 아무래도 그냥 보리차의 건더기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젓가락으로 그 조그맣고 까만 무엇을 잡아서 눈앞에 가져다 대고 자세히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영락없는 파리였었다. 단지 모양이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파리의 몸통을 제외한 모든 부속물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머리도 없고, 날개도, 다리도 없이 달랑 파리의 몸통만 남아있었기에 시력이 나쁜 김 형의 눈에는 보리차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럼 도대체 파리의 몸을 이루는 나머지 부속물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주방장의 노련한 칼질에 잘려서 다른 그릇에? 아니면 우동을 끓이는 동안 흐물흐물 끊어지고 녹아버려서 이미 김 형의 배속에 들어간 것일까. 잠시 그런 생각이 김 형의 머리를 스쳐갔다고 한다.^
순간 김 형은 자신의 앞자리에 않아서 열심히 자장면을 드시고 계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일부러 머나먼 서울나들이를 해서 특별히 사주신 우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등학생인 김 형의 머리를 스쳐갔다고 한다.
옆자리에 않아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김 형이 까만 것을 집어 들고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 까만 것이 대체 뭐요?” 김 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옆 사람에게 말했다고 한다. “별거 아니예요. 보리차 찌꺼긴가 봐요.”
그리고 김 형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우동국물을 마저 쭉 들이켰다. 앞에서 열심히 자장면을 드시고 계시던 김 형의 아버님이 김 형을 쳐다보고 물었다. “우동이 그렇게 맛있냐?” 김 형은 “그럼요. 이 집 우동이 제가 먹어본 우동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
그렇게 맛있게 우동을 먹는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흐뭇했을지, 아니면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애를 또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김 형은 아버지에게 맛있는 밥 한 끼 얻어먹은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한 때 지방에서 행세께나 하셨던 아버지는 사업에 쇠하신 후 현저하게 의욕이나 기력이 약해져갔고, 점점 자녀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셨단다. 김 형은 그게 싫어서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파리가 든 우동도 그런 마음으로 먹으니 맛있더라는 것이다.
“그래 모든 것이 마음에 있어!” 김 형은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 마음을 바로잡지 못해서 김 형은 대학시절 많은 방황을 했었다. 대학시절 그의 수많은 기행과 일탈적인 행동들은 그가 골수 반골 기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무엇에 대한 반발 때문에. 혹은 잃어버린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는데 김 형은 그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때로 김 형이 비틀거리는 것을 본다. 강인해 보이는 그의 속에는 그렇게 여린 속이 숨이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그의 착하고 바른 마음이 모습을 감추고 숨어있다. 그래서 그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든다. 저렇게 여리고 착한 사람이 이 세상을 잘 헤쳐 나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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