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오세요! 좋은 물건 싸게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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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세요! 좋은 물건 싸게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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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뉴질랜드의 거라지 세일

^^^▲ '거라지 세일'을 알리는 안내판
ⓒ 김일순^^^

외국에서의 3년여 이민생활을 돌아보면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국어를 쓰는 사회적 기반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 잃은 점이라면 가족의 결집력이 생기고, 가시적(可視的)인 가치만을 추구하던 가치관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 점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우리가 쓰고 있는 물자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고 아껴 쓰는 삶의 태도를 배운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소비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기도 하지만, 이곳 현지인들의 어릴 적부터 몸에 배인 검소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 가정에도 영향을 미쳐 절약의 중요함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그렇게 물건을 아껴쓰는 것이 지구의 자원을 보존하는 길이며 환경보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전개됐던 '아나바다'운동을 기억합니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쓴다는 취지의 물자절약운동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우리 가족들에게 물건을 아껴쓰자고 목소리를 높여 보았지만 딸들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넘쳐나는 것이 물건들이다보니 엄마의 잔소리 정도로 하루아침에 그들의 태도가 바꿔지진 않았기 때문이지요. 부족한 것을 모르고 자란 딸들 세대에서는 물건을 아껴쓴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쓸 만한 물건들도 싫증이 나면 미련 없이 버려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딸들과 함께 볼펜을 사러 문구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맞춰야 하는 일이 있기에 빨리 물건을 고르라고 재촉했지만 웬일인지 어떤 볼펜을 사야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헬레나 선생님
ⓒ 김일순^^^
이유를 물었더니 겉이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잉크의 양이 보여지게 디자인된 볼펜들 중에 어느 것이 잉크가 더 많이 들었는가를 비교하느라고 그렇다는 대답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같으면 여기저기 굴러 다니는 게 볼펜이고 잉크의 양보다는 얼마나 예쁜 디자인이냐에 제품구입의 초점을 맞추었을텐데 3년여의 외국생활 가운데 놀랍게 변한 딸들의 태도였습니다.

수퍼마켓을 가도 사고자 하는 상품가운데 어떤 것이 가격이 싸고 질이 좋은 것인가를 비교하는 이곳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한 번 구입한 물건은 그 물건의 효용이 다할 때까지 두고두고 아껴쓰는 것은 물론, 그 다음에도 허투루 버려지는 일은 없습니다.

필요없어진 물건들을 모아 두었다가 깨끗이 손질해서 싼 값으로 이웃들에게 되팔곤 하기 때문이지요. 자기에게는 필요없어졌다 할찌라도 이웃에게 필요하다면 그 물건의 가치가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입니다.

대부분 물건을 거래하는 장소로 자신들의 집차고를 이용하기에 '거라지 세일'(garage sale)이라는 말은 뉴질랜드에서는 일반화된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며칠전에 집근처의 교회에서 거라지세일을 한다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지난 토요일은 거라지 세일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9시부터 장이 열린다고 해서 9시30분쯤 교회로 가보았는데 좋은 물건을 싸게 사려는 이웃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고 벌써 물건을 사들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거라지세일은 개인이 벌린 일이 아니라 교회차원에서 열린 행사였기에 물건도 다양했고 사람들도 많이 모였습니다. 가구며, 옷, 아이들 장난감, 책, 그릇, 가지각색의 물건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격도 저렴해서 10센트나 20센트에도 제법 쓸 만한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뜻밖에도 지난 학기에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키시다가 은퇴하신 헬레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집에서 손수 구워온 머핀을 앞에 놓고 팔고 계셨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부탁드렸더니 수줍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교회적인 행사로 진행된 세일수입의 대부분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선금으로 쓰여집니다.

저도 이곳저곳을 재미있게 구경을 했습니다. 손때 묻은 물건들에게서는 물건주인들의 옛 추억과 소중한 기억들이 솔솔 풍겨오는 듯 했습니다. 몇 권의 책을 딸들을 위해서 골랐는데 가격은 2불50센트.

정말 놀랍도록 싼 가격이었습니다. 저는 뉴질랜드 사회의 건강함을 거라지세일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않는 그들의 검소함과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훈훈한 마음들이 건강한 뉴질랜드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인 것을 압니다.

보이는 화려한 것에 큰 가치를 두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읽어내는 지혜로운 뉴질랜드 사람들의 삶의 태도는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가치를 두고 살아왔던을 나의 삶을 부끄럽게 합니다.

^^^▲ 모두들 물건을 고르느라 바쁩니다.
ⓒ 김일순^^^

^^^▲ 단돈 10센트에 살 수 있는 물건들
ⓒ 김일순^^^

^^^▲ 거라지 세일에서 사온 책들
ⓒ 김일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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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 2003-10-20 14:59:35
생생한 뉴질랜드 이야기 좋습니다. ^ ^

블램크 2003-10-20 17:38:57
기사 잘 읽었습니다. 뉴질랜드 하면 낙농업, 양이 떠오르는데 요, 그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 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의 발견" 여기 대한민국에 사는 특히 주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니 많이 올려 주십시요.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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