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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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성 같이 쓰기 운동'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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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성을 좇고 이름까지 새로 짓던 개화기 여성의 경우를 보며

최초로 미국에 자비 유학을 갔던 여성은 하란사(河蘭史)로서 1900년의 일이다. 한복이 아닌 양장 차림을 가장 먼저 했던 여성은 윤고려(尹高麗)로서 1899년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전에 미국으로 자비 유학을 가고 또 양장을 한다는 것은 보통 개화한 여성이 아닐 뿐더러,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도 했을 것이니, 아마 세간에 이름깨나 오르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에 회자되었을 이름이 조금 이상하다. ‘란사’라느니, ‘고려’라느니, 우리나라 전통에 이런 이름이 있었던가.

 
   
  ^^^▲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약칭 호폐모) 거리서명 모습
ⓒ 호폐모^^^
 
 

1875년 평양에서 태어난 하란사의 본래 성은 김씨였다. 후에 인천에서 무역관련 일을 하고 있던 하상기의 소실로 들어가 본래의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라 하씨라 하고 이름을 스스로 란사라 지었다. 그녀가 자비 유학을 갈 수 있었던 데는 무역관련 일을 했던 남편의 힘이 컸을 것이다.

윤고려 또한 본래 성은 김씨였으나, 학무국장이었던 윤치오의 부인이 되고 나서 성을 윤씨로 바꾼 후 이름을 고려라고 지었다. 남편을 찾아오는 외국 손님이 있으면 언제나 자기 이름을 ‘윤 코리아’라고 했다.

이렇게 자신의 본래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르고 이름까지 새로 짓는 것은 개화기 때 사회활동을 했던 여성들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이준의 부인 이일정(조선 최초로 부인용품 상점 개업)이나, 이지용의 부인 이옥경(한일부인회 부회장), 박유산의 부인 박 에스더(조선 최초의 여성 의사)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결혼 후에는 남편 성을 따르는 서양식을 따라, 우리도 서양식으로 개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에 남편 성을 따르는 서양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결혼 후에도 여성의 성이 변하지 않는다. 같은 동양권에서는 일본이 서양처럼 남편 성을 따르고 중국과 한국은 성이 변하지 않는다. 이 것을 두고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서양보다 여권이 더 신장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실상 이것은 매우 강력한 부권의 상징일 뿐이다. 종법(宗法, 맏아들이 부모의 재산을 단독 승계하며 제사, 성묘 등의 각종 행사를 이용해 친족들을 통제하는 제도)이라는 특유의 제도가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며, 이 두 나라에서 여성이 결혼 후에도 자기 성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원래 한국의 여성들은 이름 자체가 없었다. 물론 간난이니, 언년이니 하는 이름이나 양반가의 딸이라면 아명 정도야 있었겠지만 이것은 족보나 묘비명 비롯한 각종 공식 문서에 오르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여성의 경우 문서에 기록되는 공식 명칭은 ‘아무개의 여식’ 이거나 ‘아무개의 처’였다. 종가의 선산에 있는 묘비명이나 족보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묘비명에는 누구의 부인 전주 이씨 하는 식으로 표기되어 있고, 족보에는 누구의 여식 이천 서씨 하는 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은 여필종부(女必從夫)의 법칙에 따라 남편이 관직을 제수하면 부인도 같은 품계의 봉작을 받았다. 예를 들어 남편이 정1품 영의정이 되면 그 부인도 따라서 정1품 정경부인이 되는데, 이 때 임명장에 쓰이는 내용은 ‘영의정 박 아무개의 처 김해 김씨를 정1품 정경부인에 봉하노라’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여성의 이름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박 아무개의 처 김해 김씨’ 혹은 ‘정 아무개의 여식 동래 정씨’ 하는 식으로 자기 본래의 성을 밝히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도대체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개화기의 여성들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불렀던 것은 바로 그 이유이며, 이것은 또한 종법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항이자 이름을 지음으로써 여성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100년이 흘러 요즘은 결혼을 했다고 남편 성을 따르는 일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결혼을 한 후에도 자신의 본래 성이 바뀌지 않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국제화가 진행됨에 따라 회사 내에서도 외국인과 마주칠 기회가 많은 데, 이때마다 아줌마들은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미시즈 서 라고 불러 주세요, 한국에서는 결혼을 해도 자신의 성이 바뀌지 않는 답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이지요’.

일본에서는 한 10년 전만 해도 ‘이제 곧 성이 바뀔 것 같아요’라는 말이 ‘나 결혼해요’라는 말의 완곡어로 자주 쓰이곤 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결혼 후에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이는 서양도 마찬가지인데, 결혼 후 어느 성을 가질 것인지를 여성이 임의로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 결혼 전에 사회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경우, 결혼과 함께 별안간 그 이름이 바뀌어 버리면 매우 혼란스럽고 동일인인지 아닌지도 명확하지 않다. 탤런트 ‘최진실’이 하루아침에 ‘조진실’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요즘 ‘김시라’라는 연예인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혹시 그게 예전의 ‘채시라’가 아닐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어머니성 같이 쓰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조한 은숙이니, 오조 영란이니 하는 이름들이 그 것으로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동참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 성이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할아버지의 성이 아닌가. 결혼을 했다고 남편 성을 따라 윤고려니, 하란사니 했던 이름들이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주체성의 상실이듯, 어머니 성을 같이 쓰는 이 운동도 앞으로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엔 어떤 식으로 보일는지. 남편 성 따르기가 개화기 시대의 우스운 해프닝으로 끝났듯이, 어머니 성 같이 쓰기도 행여 어느 한때의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끝날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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