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영원처럼 -사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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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영원처럼 -사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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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추억을 준비하는 것이다

^^^▲ Cape Breton Nat'l ParkCanada의 Nova Scotia주를 여행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담은 Cape Breton 국립공원의 이미지. 바다와 산의 혼합형 국립공원이었던 이 곳, 바다를 끼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산의 도로에서 보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요.
ⓒ 윤자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카메라 공포증"이라고나 할까. 렌즈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애써 지을 때면 입 주위 근육이 마비되는 느낌에 이내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꾸곤 했다. 그래서 지난 앨범들을 넘기다 보면 철이 든 이후의 내 사진은 어딘가 꼭 어색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사진만 찍는다고 하면 금새 포즈를 취하고 활짝 웃는 이들이 난 부럽기보단 신기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진을 남들보다 덜 찍은 것은 또 아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수한 사진을 찍어서 -찍기 싫어서였는지, 아님 원래 그런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울고 있는 사진이 참 많다- 내 역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앨범에 차곡차곡 정리를 해 놓으셨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만난 내 친구들 역시 사진찍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수학 여행이 잡힌다.

나와 함께 다니던 친구들은 수학여행 기간인 3일 만에 필름 10통을 다 써버렸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심심하면 사진기를 학교에 가지고 와서는 교실, 운동장, 교정 등에서 10대들만이 할 수 있는 온갖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겼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고2 때 특별활동 부서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고심끝에 내가 결국 고른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사진부"였다. 사실 그 때 내가 사진부를 택한 것은 단지 '편하다'는 이유였다. 굳이 준비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토요일 3,4교시였던 특활 2시간을 겨우 40분 만에 끝낼 수 있다는 사전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 그렇게 해서 사진부에 가입한 나와 내 친구들은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3교시에 사진부 교실로 가서 약간의 시간만 보내면 우린 시내로 가서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40분의 수업은 사진관을 경영하시는 전문 사진사가 오셔서 열성적으로 가르치셨지만 너무도 맘이 좋으신 탓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저 시간을 때우는 정도로 그 분의 설명을 건성으로 듣고는 했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 때쯤, 우리는 사진사 아저씨와 함께 공지천 야외 조각공원에 사진촬영을 하러 갔다. 그 날, 1년간 수업에서 배우지 못한 촬영기법을 난 짧은 시간 동안 어느정도 익힐 수 있었다. 피사체의 선정, 각도, 밝기, zoom, 렌즈 조절법 등.

그 때부터인가 사진을 찍는(!) 것이 좋아졌다. 인물 사진이 아닌 풍경이나 조형물의 사진을 찍는 것이 좋았다. 사람이 들어가지 않은 사진은 생동감이 없는 대신 정제된 고요함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 의해 건드려지지 않은 숨결이 있다. 난 그 풍경을 사랑하게 되었다.

2001년 1년간 미국에 머물었던 기간 동안 짬을 내어 미국 전역, 그리고 캐나다 일부를 여행했을 때 난 가족들의 구박 속에서도 -왜 필름 아깝게 자꾸 풍경만 찍어대느냐는- 꿋꿋하게 그 고요한 풍경들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보고 무언가를 가슴 속에 고이 새기게 도와주었던 풍경들이, 서툴게 찍힌 사진 속에 고요히 담겨지는 기쁨을 느끼면서.

그렇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게 된 이후 나는 '찍히는' 것에 대한 부담도 조금씩이나마 차츰 덜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렌즈 앞에서는 표정이 굳어질 때가 태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진찍는다고 할 때 적어도 예전처럼 도망가지는 않는다.

내 무수한 꿈들 중의 하나는 다양한 사진기를 사모으는 것이다. 폴라로이드, 디지털카메라, 수동카메라, 세 개의 다리가 달린 전문 카메라, 캠코더... 이렇게 다양한 사진기들로 내 인생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남기고 싶다. 그 순간들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고이 간직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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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 2003-10-20 14:46:40
세월 지나고 나면 남는건 사진밖에 없다자나요..
우리모두 사진찍으러 갑세다~ 찰칵!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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