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도 기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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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에도 기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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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노인정 기자들에게도 기자정신은 필요하다

^^^▲ 시골의 이름없는 언론사, 노인정
ⓒ 서성훈^^^
시골마을의 노인정은 동네의 모든 사건 사고에 관한 소식들이 가장 빨리 들어 오고 유통되는 곳이다.

여기서는 마을 주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파악된다. 한 마을의 주요 현안과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알아보려면 노인정으로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해야 하는 것은 노인정 기자들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가 모두 정확하거나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노인정에서는 60대 초반에서 80대 후반의 노인들이 모여 화투, 윷놀이 등의 즐길 꺼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농촌의 경우, 가족 모두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논으로 밭으로 나간다. 손자들은 학교로 향한다. 자식 내외와 손자들이 집밖으로 일을 보러 나가면, 노인들은 한 명씩 두 명씩 서서히 마을회관에 있는 노인정으로 모여든다.

허리가 안 좋아서 아기용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들이 많아 노인정 앞마당에는 수십 대의 보행기가 줄을 서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인정에 도착하면 서로 인사를 나눈다. 매일같이 보게 되는 사람들이라, 적게는 5살 많게는 10살의 나이차에도 신경쓰지 않고 말을 트며 친구처럼 이야기 한다. "왔나. 아, 춥다. 아침 저녁 아주 쌀쌀한 게 벌써 겨울이야 겨울.."

노인정에는 정말 말 잘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다.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는 할머니와, 연설을 하듯 누구에게 한탄하듯 큰소리로 호소하는 할어버지..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언변의 마술사라는 칭호와 방송기자란 수식어를 붙여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다.^

그들을 볼 때마다 때로 직업기자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실제로 기자는 직접 현장을 돌아 다니며 주민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민심도 파악하고 몰랐던 사건이나 사고를 접하기도 한다. 이들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로 동네 여기저기 운동 삼아, 재미 삼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주 놀러 다니며,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듣고 접한다. 취재기자와 다를 게 없다.

그런 점에서 노인정 회원들은 '동네 원로기자'다. 동네 원로기자(노인정 회원)들이 언론사(노인정, 마을회관)에 모여 나누는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아들, 며느리, 손주 등의 자식 자랑과 하루동안 있었던 동네 사건 사고와 화제들이다.

아침 9시, 속속 마을 노인정에 집결한 노인들은 우선 TV를 켜고 잠시 명상에 잠긴다. 고요한 분위기를 깨고 갑자기, 먼저 최씨 할머니가 이야기를 꺼낸다. 멀리 타지에 시집간 딸 자랑을 한다. "우리딸이 어제 왔는데, 내옷 사왔더라, 몸빼하고, 신발하고 그라고 가면서 용돈해라면서 20만원도 주더라 허허" 이 자랑을 들은 민씨 할머니, "좋겠데이 할망구 딸내미 키운 보람 있구먼" 하며 같이 웃어준다.

아침의 첫 대화는 원래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한다. 가벼운 대화 후에는 시골 마을의 각종 사건 사고와 동네 핫이슈들이 쏟아져 나온다. 앞서의 예는 동네 언론사(노인정)와 원로기자(노인정 회원)들의 긍정적인 사례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는 부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오씨 할머니, "어제 며느리가 나 보구.. 막 대들더라!"며 노인정 할머니에게 하소연한다. 곧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럴 수 있나?", "감히 어른한테 대들어!!"라는 그 며느리에 대한 질타와 분노가 이어진다. 사실 이것이 더 자주 접하게 되는 노인정의 풍경이다.

싸움의 좌초지정과 원인은 제쳐두고 한쪽의 주장을 들어주어, 상대편 당사자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일방적인 매도를 일삼는다. 왜곡되고 편향된 여론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이런 사례는 많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은 곧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마구 부풀려진다. 그리고 결국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 십상인 나쁜 소문만 무성해진다.

"OO 할망구가 죽었는데 약먹고 자살한 거라며"라거나 하는 이야기가 그런 사례다. 사실 이건 전혀 사실 무근인 이야기이다. OO 할머니는 노령에다 고질적인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이같은 노인정의 몇몇 사례는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행태와 많이 닮았다. 특히, 사실 유무를 가려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려 하기보다는 이른바 특종에 현혹되어 그런 노력이 공공연히 무시된 채 보도되는 경우가 그렇다.

시골마을 노인정은 동네 어른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즐거운 노년을 보내는 게 목적이지만, 때로는 노인정에서 나온 잘못된 소문으로 피해를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이같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길 가던 행인이 애꿎게도 차에 치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정보만 유통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일이지만, 사실 뜬 소문이 입방아로는 더 재밌는 법이기에 나오는 현상이다.

기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거나, 농촌의 이름없는 원로기자(노인정 회원)일지라도 잘못된 정보보다는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바르게 다루는 데 애써야 할 일이다. 그래야 애꿎게 낭패를 보는 선의의 피해자가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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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 2003-10-19 16:37:45
기자가 반성문을 쓴건지 남탓하기를 쓴건지 모르겠지만 읽은만한 글이네요. 언론이 노인정의 노인들과 같아서는 안되겠죠. 노인정은 그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만 언론은 전체 국민에 영향을 주므로 어디까지나 사실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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