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간 신문들^^^ | ||
사실 신문이 와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날이 많은데, 이상하게 매일 오는 신문이 오지 않으면 궁금해지기 시작하다가 결국에는 화를 내게 됩니다. 그런데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 날이 더 즐거운 이유는 신문을 배달하며 하루를 시작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동네는 62번 버스 한 대밖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862번도 다니기 시작했지만, 당시엔 서울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나 타 지역에 비해 발전도 느린 편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 롯데리아가 생겼을 때, 동네의 큰 이야기 거리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도 뚝떨어진 섬이라고해서 우리는 뚝섬이라고 했습니다. 그 62번을 매일 타고 학교가는 길에 항상 마주치는 같은 교복을 입은 키작고 마른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전공과목은 다르지만 항상 얼굴을 마주하다보니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와 종교는 다르지만, 깊은 신앙심을 가진 친구는 집안을 이끄는 가장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동생이 셋이나 있는데 어린나이에 집안일을 다 맡아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아버지의 사고로 보상비를 매달 받아서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는데, 그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신문배달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는 처음에 만류 했습니다. 너처럼 작은 여자아이가 하기엔 너무 힘들고 벅찬 일이라구요. 하지만, 친구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서 저는 같이 신문배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신문사에서 여자애들은 며칠 나오다 나오지 않는다면서 그럴 바에야 시작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적어도 6개월 이상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우리는 매일 아침 새벽 3시에 신문사로 향했고, 아저씨들의 배려로 비교적 쉬운 구역을 배달하게 되었습니다.
사춘기 때라서 그런지 혹시 누가 알아볼까봐 모자를 꾹 눌러쓰고 남들보다 빨리 나가서 준비를 했습니다. 배달하라고 한 곳에 배달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리고 있던 집주인의 엄한 호통에 놀라기도 하고, 가끔 새벽에 운동하시는 분들에게 몇 부 남은 신문을 팔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유 한잔 정도는 사먹을 수 있었습니다.
간혹 운 좋은날은 집주인이 해외로 출장을 가기 때문에 며칠간 배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먼 집의 경우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고 남는 신문은 더 팔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 날이면 배달하시는 분에게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란 생각으로 웃음을 띠게 됩니다.
당시 한 달간 열심히 일했지만, 고작 몇 만원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돌리고 남는 신문을 학교로 가지고 와서 친구들에게 싸게 팔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월급을 타던 날 생색을 내며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했습니다. 과한 외식 덕분에 월급의 반을 써버렸지만, 그래도 뿌듯함에 기뻤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친구도 저도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부터 약했던 친구는 날씨가 추워지자 종종 배달 일을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친구를 대신해서 친구의 구역을 돌려주곤 했습니다. 결국 친구는 감기에 걸려 고생하게 되었고, 배달 일을 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신문배달 일을 하다보니 그곳 생활이 어떤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그만둘 경우 다른 후임자를 찾기 전까지 누군가가 대신해서 배달을 해야 하고, 박봉에 모두들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처음 배달 일을 시켜달라고 할 때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한겨울이 다 되어 일을 그만두었고, 고3 생활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신문배달을 운동 삼아 한다는 얘기를 저는 믿지 않습니다. 운동 삼아 하기엔 너무 힘든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진 남들보다 어렵고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신문이 배달되지 않더라도 너무 화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혹시 말 못할 사정이 있거나, 혹시 아주 즐거운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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