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기 모면을 위한 제언
국가 위기 모면을 위한 제언
  • 최익주 칼럼니스트
  • 승인 2003.10.09 16: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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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인 영향을 철저히 깨달아야

유교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내면의 가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교에는 평생 귀감으로 여길만한 내용과 교훈들이 많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기원전에 만들어진 원론(원문) 이상으로 발전된 것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서 법이 제정되면 시행령, 규칙, 세칙, 고시, 훈령 심지어 각 기관에서 운용되는 자체 내부 규정도 필요하다. 만일 세부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과 부작용과 폐해가 늘어나기 때문에 아예 법이 없는 것보다 못하다.

또한 법조문(원문)과 각종 규정은 계속 해서 다시 바뀌고 없어져서 새로 추가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 깊이 스며들어서 변화 발전하는 유럽의 불문율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학문 과학 예술 산업 문화 등 모든 영역이 체계적으로 발전되었다. 그런데도 유교는 원론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이미 도태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며 엄청난 병폐를 만들어낸 면이 있다.

특히 유교의 덕목을 성실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고 쩔쩔 매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잘못된 현실에서의 일을 인간이 바로잡기보다 하늘에서 천벌을 내릴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교의 덕목이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 오직 타고난 심성에 의존해서 출발했다는 증거다. 이렇기 때문에 다수가 합심해서 직접 바꾸고 만들고 발전시키는 사회성과 사회의식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개인이 미덕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나 국가도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무책임한 추측이 전제된 것이다.cs

이를 입증해주는 증거는 흥부놀부, 장화홍련 뿐만 아니라 고을마다 동네마다 귀신의 전설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귀신과 불의가 극성을 부렸다. 어쩌면 인간의 존엄성을 뿌리에서 차단시켜버린 유교로 인해서 수천 년 동안 말로 못할 피해가 반복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유교는 수천 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발전은커녕 깊은 산골의 현대판 서당에서 여전히 무릎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초라한 모습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교의 소극적인 잔재가 남겨놓은 국민의식과 사회분위기와 국가 모습은 체계와 질서와 방향조차 잃은 채 엉망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 우리(국민)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은 지지 않는다.만일 유교의 발원지가 자유와 평등과 인권과 복지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과 체계적인 논리가 존중되는 합리적인 문화권에서 생겨났다면 어쩌면 세상은 이미 낙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반대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과 인권과 복지라는 개념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최악의 환경과 조건에서 생겨났다. 더구나 내적인 가치 덕목의 추구와는 정반대인 출세(입신양명과 부귀영화와 치국평천하)를 위해 수많은 인간을 전쟁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영웅주의적인 삼국지 문화권에서 생겼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점이다.

이는 노에나 천민처럼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복이나 자유는 상상조차 못하는 암담한 시대에 사후 세계(종교)가 설득력을 지니고 공감대를 얻어서 안식처 역할을 해주는 것과 일맥 상통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막막하거나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들은 주로 비현실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심하다.

유교 역시 일반 백성들이 국가, 사회, 미래에 대한 무기력과 무지에서 자기 내면의 미덕을 붙들도록 유도해서 이끌어준 셈이다. 이는 희망이 없는 백성들이 인생의 의미를 둘 것이 필요한 것과 일치된 셈이다.

유교는 관리들 특히 탐관오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마음가짐과 겸양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진 심리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이 겸양과 인간미로 나가면 곧장 책임지고 쫓겨날 수도 있다. 이는 지배층의 논리와 피지배층인 서민의 논리가 극단적으로 상반될 수 있는 현상이다.

어쨌든 국가 권력과 사회 지배층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시간과 정신과 생활에 의미를 둘 만한 것들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서민 사회의 질서와 분위기 역시 왕족이나 양반 관료를 부러워하던 본심과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서민들도 관리나 양반에게 차별 당한 것처럼 자기 가문과 동네에서 상하와 권위와 체면과 격식을 따졌다. 뿐만 아니라 남녀 차별, 며느리 차별, 차남 차별, 상놈 차별 등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문화와 전통과 예절로 당당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어른과 과거 중심 사회로 고착시켜버린 나머지 권위와 격식으로 지나치게 치우쳤으며 오히려 젊고 참신하고 새로운 것을 경솔하고 경박하게 취급했다. 특히 과거(조상, 전통)를 강조하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개방과 자유와 미래에 대해서 심한 거부감과 폐쇄성을 드러냈다.

심지어 죽어버린 사람에게 3년 탈상이나 호화 묘와 커다란 비석을 꾸며주는 등 수많은 비용(사회적 잠재력과 미래 가능성의 밑천)을 허비해버렸다. 이는 땅과 돌을 파내는데 사회적 여력(비용, 시간, 정신)을 지출해서 곧바로 땅과 돌에 묻어버리는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낭비였다.

막대한 국가적 비용을 커나는 꿈나무들의 잠재력 향상과 미래 가능성에 쏟아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국이 기득권의 천국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다. 오늘날에도 호화묘를 치장하는 속물 근성을 마치 후손의 도리로 여기거나, 조상들에게 출세를 입증하는 자랑처럼 여기는 듯하다.

이처럼 유교는 자신의 내면을 붙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과거(자기 조상, 뿌리 찾기)로 끄집고 가는 어리석음을 합리화시키고 강화시켰다. 급기야 최고 윗 조상을 기점으로 자손들이 계속 뿌리를 뻗는 괴상한 족보를 만들었다.

우리 조상의 실상을 바르게 알기 위해 현행 족보를 정반대로 살펴보자. 자기 자신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두 사람(아버지와 엄마)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모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네 사람(조부모 외조부모)이 필요하다.

이런 방법으로 40대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자기 자신과 부모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1조2천억이라는 조상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40대까지 조상의 합계가 약 2조가 된다. 그런데 현행 족보 체계로 조상을 계산하면 약 200여명(한국의 성씨)밖에 안 된다.

그럼 언제인가 과거에는 성씨가 각기 다른 남녀 400명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 족보에는 없기 때문에 조상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위에서의 두 가지 방법은 사실과는 달리 억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억지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면 가장 먼저 자기 조상이란 개념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장난 같은 모순인지를 금새 알게 된다. 이는 성씨를 따질 것도 없이 위로 올라갈수록 서로가 친척이고 사돈이고 집안이라는 결론에 도달된다.

이제는 씨족, 가문, 조상이란 개념에서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며 현대에 알맞게 손질이 필요하다. 당초에 잘못된 것을 기어코 인정하지 않고 고수하면 도태 당하는 길밖에 없다.

현대사회에 합당한 국민의식으로

지구촌이 하나가 되어버린 첨단의 현대로 접어들기 이전인 민주주의만 해도 국민이 주인인 시스템이다. 그래서 구성원의 생각과 자질과 배운 지식과 행동이 곧 사회와 국가와 미래까지 직결된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신속한 교통 수단과 첨단 정보로 인해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곧바로 행위로 옮겨질 수 있으며 즉각 결과로 산출되는 세상이다. 이처럼 개인(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행동이 곧바로 일치되고 실현되는 최첨단에 몸담고 있다.

그런데도 과거 잘못된 지배 체제에서 길들여진 답답한 습성들을 고수한 채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원망과 흥분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서로가 합심하고 협력하면 될 것을 여전히 유교적인 근성에 머무른 채 자기 이해관계를 따지거나 곧바로 성패를 따지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비전을 찾으려면 "성공이란 영리한 개인들의 머리 속 판단이나, 점쟁이의 예측 속에 있지 않고 함께 협력하는 과정 속에서 직접 일궈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사회가 썩어서 암담해도 입으로 욕만 한 채 여전히 자기 시간과 정신과 비용을 과거 위주, 놀이 위주, 투기 위주, 노름 위주, 향락과 퇴폐 위주로 흘려버린다. 이미 각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상당한 지위와 기회를 차지한 사람들이 책임감은커녕 유유상종 기득권을 차지해버린지도 오래 되었다.

지금도 연고와 연줄과 뇌물을 동원해서 각종 제도권에 앉은 다음 지위와 직책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심지어 제도권에서 보장해주는 연구원들조차 한국의 현실과 장래에 대한 책임의식과는 별개로 과거 지향적인 연구나 자신들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학술을 연구한다는 단체 역시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첨단의 미래가 아니라 참된 미래와 연구를 동시에 망치는 한심한 지경이다.

결국 왕족이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망국 속에서도 왕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나, 그 아래 양반 관리들이 끝까지 탐관오리 짓을 하는 것이나, 공무원들이 뇌물을 챙기고 향응을 즐기는 것이나, 희망이 없는 서민들이 가정에서 어른과 예절이나 따지며 권위를 찾는 것이나, 일반 국민들이 층층이 계급을 만들고 1-2살 나이까지 따져서 위아래를 만든 것이나 모두 비슷한 원리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 시간, 정신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그런데 구성원들이 졸렬하고 비열한 의식과 행위를 고집하면 밝은 미래로 향할 수 없다.

아쉽지만 지면 관계상 끝내기로 한다. 우리의 의식과 문화와 사회와 국가와 미래에 대한 영향과 다양한 관련성을 계속 설명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유교문화권의 치명적인 한계는 그냥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이해하면 실천 없이도 끝이라는 점이다.

이는 한국인, 동양권, 유교문화권의 공통적인 한계다. 인식은 인식일 뿐이다. 모르는 것을 새로 알았을 때 관심을 보이고 의문을 갖고 질문을 쏟아낼 때 비로소 전후 상황이 명료해진다.

의식이 명료해야만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이런 분석과 시도로 인해서 한국이 참된 미래로 향할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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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협 2003-10-09 18:57:41
    광심가지고 읽고 있습니다. 회수를 늘려서 후속편을 집필해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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