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충돌 끝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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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충돌 끝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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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상 두 민족, 남들이 끼어들어 문제 더 꼬인다

이스라엘과 아랍세계의 갈등은 이제 세계인들이 눈감고도 인지할 정도로 익숙해 있다.

긍정적 인식보다는 부정적, 비관적 인식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의 초강대국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아랍세계와 끊임없이 충돌하고 여태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이라는 인류에게 있어서는 안될 전쟁을 치렀다.

세계 도처에서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갈등과 충돌, 자국 이기주의에 따른 전쟁 등 있어서 는 안될 전쟁들이 난무한 게 오늘 우리 세계이다.

한 조상, 두 민족-성경으로 본 분쟁의 원천

사실 따지고 보면 유대인과 아랍인은 같은 셈족이다. 유대인이나 아랍인 모두 그들의 시조로 아브라함을 모시고 있다. 현재 쿠웨이트 부근 갈대아 우르 지방에 살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지금의 이스라엘 땅인 가나안에 정착하게 됐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해 살면서 아내 사래(후에 '사라'로 개명)는 몸종으로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이 되게 해 아들을 낳았다. 하갈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이스마엘은 사라의 본처 아들이 아니라 서자인 것이다.

서자인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약속한 아들이 아닌 아브라함과 하갈의 육신의 생각에서 나온 육신의 아들에 불과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에 아브라함 본처 사라에게서 아들 '이삭'이 태어났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태어남으로서 아브라함에게 불행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 본처 사라는 서자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버리라고 강권한다.

본처 사라의 강권에 아브라함은 고민을 거듭하다 사라의 말대로 하라는 하나님의 말을 듣고 이들을 내쫓았다. 하나님은 이들을 내쫓으면서 이스마엘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후 본처 사라가 사망하자 아브라함은 또 후처로 '그두라'를 삼았다. 그두라에게서도 여러 아들이 태어났다. 이와 같이 그두라의 여러 아들들과 이스마엘의 아들들이 현재의 아랍 여러 나라의 조상들이 되었다.

오늘날 분쟁의 시작은?

기원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나라를 세운 유대인은 나라가 망하자 유랑 민족의 운명으로 전락했다.

유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조상의 땅인 지금의 이스라엘 땅인 가나안 언덕으로 귀환할 것을 유대인의 비원(悲願)으로 삼았다. 이를 소위 시오니즘이라 부른다.

현재의 이스라엘령과 가자지구, 그리고 끈임 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요르단 강 서안을 포함한 펄레스티나에 유대인 국가를 재건하려는 정치적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636년 예루살렘은 아랍인들에게 공략됐고 후에 팔레스티나의 대부분 지역은 아랍인 이슬람교도들에게 점거돼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의 성지가 됐다.

영국의 이중적 행위

또 하나의 분쟁이 시작됐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이 분쟁의 원인 제공자로 등장한다. 영국은 전쟁 수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시오니즘을 지지한다. 그리고 동시에 독일편에 서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후방을 교란할 목적으로 아랍인의 협력을 요청한다. 그리고 또 영국은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팔레스티나를 내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천추의 한이 될 서로 모순된 약속을 한 것이다.

영국은 1915년 7월부터 16년 3월까지 주 이집트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을 통해서 당시 아랍을 대표했던 아랍 태수 샤리프 후세인에게 편지를 보내 팔레스티나를 포함한 아랍국가 독립을 약속했다.

동시에 영국은 유대인에 대해서는 팔레스티나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 국가 건설에 호의적 반응을 보이며 유대인 국가 창설이 되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는 '벨푸어 선언'으로 유대인을 달랬다.

이와 같은 영국의 이중적 행위로 두 민족간 갈등과 충돌이 극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 후 영국은 팔레스티나를 위임통치에 나섰고 벨푸어선언으로 국가 재건을 약속받은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고 이 곳에 거주했던 아랍인들과 충돌이 벌어지게 됐다.

4차례의 중동 전쟁

1947년 11월 유엔총회에서 인준한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인정하지 않는 아랍측은 유대인에 대한 게릴라전 투쟁을 전개했고, 이에 유대인측은 이 분할안을 수용해 건국을 준비하면서 시오니스트의 테러조직이 예루살렘 마을 근교를 습격해 주민을 학살하고 팔레스타인 마을에 유대인 부대의 공포심을 심게 했다.

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이 선언되자 팔레스타인 군대들은 일제히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면서 일어난 전쟁이 바로 제1차 중동전이다. 이 1차 중동전을 팔레스타인측(아랍측)은 '팔레스타인 전쟁'이라 칭하고 유대인측은 '이스라엘 독립전쟁'이라 칭한다. 이때부터 사사건건 아랍(현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과 이스라엘은 한가지 사실에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되기 시작했다.

당시 전황을 보면 누구나 유대인이 형편없이 패배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유대인이 약하지 않았다. 숫자상 아랍인들(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등)과 유대인은 3대1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유대인은 미국의 자금으로 체코에서 수천 자루의 소총과 비행기 몇 대를 구한 이스라엘은 무기에서 우세를 보였다. 또 의지도 확고했다. 이 전쟁은 거의 1년간 계속되다 49년7월에 휴전 협정이 맺어지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

그후 1956년 수에즈운하 전쟁으로 불리는 제2차 중동전쟁과 6일 전쟁인 제3차 중동전쟁이 1967년에 발생하였고 1973년에는 욤키푸르 전쟁이라는 제 4차 중동전쟁이 있었다.

중동 평화의 걸림돌

이스라엘 국토의 60%, 요르단은 85%, 이집트는 90%가 사막이다. 즉 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소위 '물전쟁'의 소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이랍국가들 사이에 내재돼 있다. 물의 사용권과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과 전쟁이 그치지 않았음을 볼 때, 물이 곧 분쟁, 전쟁의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유대인 정착 문제도 분쟁의 원인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지구에 3만채의 주택을 건설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었다. 이에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해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정착하는 것은 명백한 팔레스타인 주권 침해이며 점령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착촌 철수를 이스라엘 측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중동평화 로드맵이 발표되면서 이스라엘은 평화 정착 일환으로 극히 일부 철수를 단행했을 뿐이다.

이슬람 과격 테러 조직도 문제다. 이스라엘은 당초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슬람 무장 저항단체를 무력화시켜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안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강경파 그룹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주장하고 실제로 많은 노력을 해왔다. 문제가 여기서 또 크게 번지는 것이다. '왜 내 땅에 내가 살고 있는데 우리 팔레스타인들을 몰아 내려 하는가'라는 항변과 함께 대 이스라엘 공격을 서슴치 않고 있다.

미국의 끊임없는 이스라엘 편들기도 문제로 등장한다. 아랍권은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로는 중동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의 대 아랍권 정책과 그들을 향한 적개심이 아랍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한번도 아랍을 위해 도움을 준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미국의 대 중동정책의 획기적 전환 없이는 중동문제 해결은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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