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해군 창설의 모체가 되었던 곳해방병단 결단식 터 ⓒ 뉴스타운 이인석^^^ | ||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아직 정부가 세워지기도 전에 우리의 바다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해군창설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중심인물은 손원일,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손원일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의 장남으로 1909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했으며 1924년 중국 난징 중양대학 해양과를 졸업하고 상선의 승조원 생활을 했다. 1927년 중국해군의 국비유학생으로 3년간 독일에서 수학하기도 했고 1930년에는 상해독립단체의 비밀연락원으로 입국했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 중국으로 돌아가 상선의 승조원 생활을 하던 중 중국에서 조국의 해방을 맞는다.
1945년 11월 11일 오전 11시 손원일과 70명의 창설요원들은 미군정청 고문 이동근과 해사국장 칼스텐 소령이 참석한 가운데 해사대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던 옛 충훈부 건물에서 ‘해방병단’ 창설식을 거행했다. 이 단체를 우리 한국 측에서는 ‘해방병단’ 이라 불렀고 미군정청에서는 코스트 가드(Coast Guard) 라 불렀다. 손원일은 이때 창설된 해방병단의 초대 단장에 취임하였는데 이것이 한국해군의 모체가 되었다.
그는 1946년 해안경비대 교장과 총사령관을 지내고 1948년 9월5일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하여 1953년6월 30일 중장으로 예편되었으며 예편 후 1956년까지 국방부장관을 지내고 주독일대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해방병단에 함께 참여했던 정긍모 제독은 1954년 11월 1일부터 1959년 2월 23일까지 3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종로구 안국동 로터리 인사동 쪽 입구에 세워져 있는 두 개의 표지석은 조선시대 공신들을 관리하던 관청과 우리 한국 해군창설의 모체가 되었던 해방병단의 결단식을 가졌던 의미 깊은 곳이고 주변에는 예스러운 모습의 석장승 2개와 커다랗고 검은 화분 그리고 문화의 거리를 알리는 붓 모양의 조형물이 강추위 속에 멋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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