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두율 교수 ⓒ 사진/뉴스타운 고병현 기자^^^ | ||
난 김철수가 아니다
-그동안 해명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못하고 지금에서야 입장을 밝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월요일(9월 29일) 김형태 변호사는 '초청 당시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청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기자회견문엔 어떤 형태로든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북축으로부터 공식적인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어느 부분이 맞는 것인지 알고 싶다.
[송두율 교수]국정원에서 나흘에 걸쳐 조사를 받았는데, 그때는 조사중이었기 때문에 그때그때 나오는 이야기 일일이 설명할 수 없었다. 조사 끝나고 조서가 첨부된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얘기하려고 했다.
[김변호사]오늘 발표문에서 들어갈 때 김철수로 초청돼 있지 않았다고 발표문에서 말한 것은 아니다. 당시 초청 받아 갈 때 김철수란 이름으로 초청돼 있었다. 기자회견문에는 이 얘기가 실수로 빠졌는데, (김철수란 이름으로 초청 받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돈 부분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달라. (기자회견문에 밝힌 금액을) 대강 계산해 보면 15만불이 나온다. 이는 15만불을 받았지만 공작금 아니라는 것인가. 또 수 차례 방북 동안 김철수라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등재돼 있다는 것을 사후에 인지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남북간의 경계인으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라며 거부의 뜻을 명확히 밝힌 적이 있나.
[송]15만불이라는 계산이 어떻게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계산한 것은 다 합쳐도 2만불 정도다. 또 92년부터 94년 사이에 7~8만불 받은 것을 다 합치면 10만불 정도다. (기자회견문에) 다 나와있는데 그 액수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나는 남북 경계인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개인이다. 거대한 국가체제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쉽지 않았고, 그 내면 갈등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가 드러났다.
사회자(정현백 여성연합 대표)-학술지원비 6~7만불과 여비를 합치면 7~8만불 정도가 맞다. 어떻게 15만불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송 교수가 명시적으로 거부했다는 점은 기자회견문에 이미 나와 있다.
^^^^^^▲ 송두율 교수 ⓒ 사진/뉴스타운 고병현 기자^^^^^^ | ||
-오늘 보도를 보니 황석영씨의 인터뷰 기사로 해서 "한국에 남고 싶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후의 계획에 대해 밝혀 달라.
[송]제가 수십 년 간 외국생활을 하고, 37 고국땅을 밟았다. 처음 들어올 때는 여기서 후학들도 가르치고, 여러 가지 구상이 있었다. 아직까지 여러 가지 구상하고 사람도 만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젊은이들을 만나고 가르칠지 생각해보려 한다.
-황장엽 노동당 비서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황장엽 전 비서가 망명후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사후 통보를 했다는 걸 부인 안하고 김 변호사도 가명 썼다고 얘기하는데 소송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기자회견문을 보면 사죄할 건 사죄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지, 김철수란 가명과 노동당 입당 등 말바꾸기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송]98년 7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계속된 소송 사건은 기본적으로 양쪽 오고간 문건들이 문제가 돼 소송이 됐는데, 나의 기본적인 입장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정치국원이라는 것을 한번도 인지 못했기 때문에 북에서 내가 권력 핵심이라는 것을 부인했던 것이다.
두 번째, 무엇을 사과하려하는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문제는 해당 기관에서 법적인 결론이 나올 것이다. 내가 제일 상상하기 싫은 상황은 추방되는 것이다. 내가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것은 이 땅에 뿌리내리기 위함이다. 추방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비판적 성찰자로서 경계인으로 살겠다고 했는데 노동당에 가입한 것은 북한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지금 기자회견장 현수막에도 송두율 교수라고 나왔는데, 뮌스터 대학에 확인해 본 결과 '사강사'로 돼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 어떤 강의를 맡으셨는지 말씀해 달라.
[송]경계인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중간에 있다'는 것이지만, 본래 호주 원주민과 백인들 사이에 정보 전해주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경계인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 남쪽 땅을 모르고서는 경계인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37년 만에 분단된 조국의 남쪽을 찾았다.
이번 학기 두 개의 강의를 맡았다. 하나는 '반미주의 현상, 원인 그리고 전망'에 대해서다. 독일에서는 9·11 이후 가장 뜨거운 테마이다. 혹시라도 유럽의 지성들은 미국에 굉장히 비판적이다. 다른 하나의 강의는 '복지사회의 미래'라는 강의다. 독일사회가 현재 그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나는 30년 동안 한번도 (똑같은 테마를) 두 번 강의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학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교수 문제에 대해, 한국적인 언어로 그 제도를 설명할 수도 없다. 관계 기관에 찾아가서 물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송 교수에게 쏠린 시선 ⓒ 사진/뉴스타운 고병현 기자^^^ | ||
정부의 안전보장 없었다
-이번에 들어올 때 정부나 관계기관과 안전에 대한 사전 협의가 있었는지 알고 싶다.
[송]이번이 내가 가족과 (고국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이다. 아들들이 미국에서 살고 있고. 마지막 한 달을 비워서 온 가족이 여기 왔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고,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집념 때문에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느꼈다.
하지만 사람이 보고 싶다는 것이 내면에서 올라와서 온 거지, 결국은 내가 결단을 내렸고 그 결단 때문에 처음부터 조사에 순순히 응해서 솔직하고 순수하게 진술했다. 정부 및 어떤 단체와도 사전 협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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