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았지만 뒤늦게 시작한 광고영업이 성격에 잘 맞았는지 시작한 지 2년여가 조금 넘으면서는 제법 일의 재미도 느끼고 보람도 찾을 무렵, 유치원에 다니던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오전에 가면 오후 6시가 넘어 데리고 와도 문제가 없었지만 초등학교에 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었다. 일의 성격상 고정된 시간을 모두 사무실에서 지내야 하는 일은 아니므로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직장생활의 연장이 가능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 막 물오른 (?) 능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해 한 달 수입도 만만치 않게 들어오고 있었다.조금만 더 노력하면 남편의 수입을 훨씬 능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즈음 아이의 뒷바라지 문제를 놓고 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아무리 필요하고 중요한 문제였지만 일생에 있어서 단 한 번의 시절이 될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가 기다리며 차려주는 따뜻한 점심을 먹는 가장 기본적인 행복을 빼앗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딸아이가 들어갈 학교는 그나마 급식도 하지 않아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서 점심을 먹어야 그 뒤에 학원을 보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100% 말렸다. 어떻게 쌓은 공인데 그만두냐, 아이가 안쓰러워도 잠깐이다, 어디 방과 후 학원에라도 연계시켜 보내면 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 등등..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돈으로 아이의 뒷바라지를 더 잘해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아이와 나누는 사랑의 교감은 그때가 아니면 일생에서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과감히 사표를 냈고 그동안 쌓았던 노하우나 거래처 등은 아낌없이 동료직원들에게 물려주고 나왔다.
처음 몇 일 동안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언가 허전했고 내 나름의 인생방향이 달라지는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와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점심을 먹고 몸과 마음이 포만한 기쁨으로 의기양양하게 피아노 학원엘 가는 것을 보면서 직장을 그만두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위해 내린 결정이 정작 나를 위해 내린 결정이 되어준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다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추석에 만난 큰조카가 불쑥 내어준 것은 내가 어린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글쓰기의 활로였다.
‘자유기고가’ 과정을 제대로 밟을 수 있는 코스였고 그로 인해 나는 어린시절의 꿈을 조금이나마 현실에 옮기면서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아직 시작단계라 여기저기 웹진과 조그만 잡지에 기고를 하고 있지만 준비하고 있는 단행본도 있고 나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진행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만약 내가 그때 돈의 위력에 눌려 아이를 향한 순수한 엄마의 몫을 놓쳤더라면 어쩌면 찾아와 주지 않았을 또 다른 길을 지금은 너무나 사랑하며 딸아이와 행복하게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끔 어려워지는 경제에 만약 과거의 일을 계속하고 있었더라면 지금쯤 남들보다 훨씬 나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을 아주 가끔은 해본다.
하지만 이내 내 판단은 절대적으로 옳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앞으로도 나는 살아가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 내가 절대적으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무었인가를 항상 생각하며 살 것이다. 그 길만이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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